수능 물리Ⅱ 오답을 바로잡는 과정에는 한국물리학회의 판단과 결단력이 크게 작용했다.

대통령 선거날인 지난 19일 한국물리학회 회장인 김정구(60) 서울대 물리학부 교수는 연구실에서 한 통의 이메일을 확인했다. 수능 수험생이 이번 수능 물리II 문제에 오류가 있으니 판단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학회의 공식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김 회장은 학회 산하 교육위원회에서 수능 물리 문제의 오류를 의뢰했다.

이어 22일 서울 역삼동의 물리학회 사무실에 모인 8명의 물리학자들은 고등학교 수능 물리 문제를 놓고 2시간 반이나 토론했다. 위원들은 격론을 벌인 끝에 수능 문제에 결함이 있으므로 복수정답을 인정해야 한다고 결정을 내렸다. 김 회장은 "문제의 오류 판단은 어렵지 않으나 학회의 입장 표명에 따른 파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아무 문제가 없다"고 버티던 교육과정평가원은 이틀 뒤 물리학회 견해대로 복수정답을 인정하게 됐다.

이번 물리학회의 대응은 10여 년 전 대한수학회의 모습과 대비된다. 지난 1996년 대한수학회는 사법부가 성균관대학교 수학문제 오류를 검증해 달라는 질의에 답변을 회피했다. 전 성균관대 수학과 김명호 교수는 본인이 성균관대 본고사 입시 문제의 오류를 문제 삼자, 학교측이 자신을 부당하게 교수 임용에서 탈락시켰다며 소송을 제기한 상태였다. 이때 재판부는 문제의 오류가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대한수학회에 의뢰했지만, 학회는 답변하지 않았다. 당시 대한수학회는 “특정 대학의 인사와 관련된 사안이기 때문에 학회는 답변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김 전 교수는 제도권을 불신하게 됐고 지난 1월 자신의 재판을 담당한 판사에게 석궁을 쏘아 ‘석궁 교수’로 세간에 알려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