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학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탐구영역 물리Ⅱ 11번 문제 오답 논란과 관련해 수능을 주관한 교육과정평가원에 시험 직후 이의신청이 들어 왔으나, 평가원측이 한국물리학회에 의견을 묻지 않아 화를 키운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피해를 본 해당 수험생들은 "정부가 수능관리를 잘못해 등급이 떨어졌다" "소송을 제기하겠다"며 반발하고 있다. 수능 등급제에 이어 문제 오답 논란으로 2008학년도 수능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들의 불만과 비판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화 키웠다

수능시험일(11월15일)부터 11월19일까지 교육과정평가원은 수능문제에 대한 이의신청을 받았고, 문제나 정답에 오류가 있다는 의견은 811건이 접수됐다. 이 중에는 물리 Ⅱ 11번 문제도 포함돼 있다.

평가원에서는 15명으로 구성된 ‘이의심사실무위원회’가 이 문제를 심의했다. 출제위원 10명과 외부 물리학 전공 교수 1명, 평가원 직원 등이 위원회에 포함됐다. 이 위원회는 이의신청된 문항 중 중요사안으로 판단된 문항을 학회에 보내 유권해석을 받도록 되어있다. 하지만 위원회는 물리Ⅱ 11번을 중요사안이라고 판단하지 않아 한국물리학회에 유권해석을 의뢰하지도 않았다. 평가원측은 “이상기체를 단원자 분자와 다원자 분자로 구분하여 내부에너지를 구하는 것은 고등학교 교과과정을 벗어나는 수준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김정구 한국물리학회 회장은 22일 기자회견을 열고 “표현이 명확하지 않은 문제가 수능에서 출제됐다”며 “이상기체가 단원자 분자인지 혹은 이원자 이상의 다원자 분자인지에 대한 기술이 빠져 있어 해당 문제는 2번과 4번 모두 정답이 가능하다”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은 “수능이 실시된 바로 다음 날 문제 오류지적이 인터넷을 통해 공론화됐고 출제를 담당한 기관에도 이의 신청이 들어갔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번 문제의 오류를 지적하는 데 고도의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교육과정평가원은 "정답 변경은 없다"며 "한국물리학회는 수험생들이 배우는 고등학교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고려하지 않고 학문적 관점에서 입장을 표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이 고교 교과에 포함돼 있다는 잇따른 지적에 대해서도 평가원은 ‘정답 수정은 없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고집하고 있다.

◆7차 교육과정 교과서에 명시

교육과정평가원은 다원자 분자는 고등학교 교육과정 밖이라고 설명했지만, 교학사에서 만든 교과서 등에서는 다원자 분자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교학사 교과서에서는 단원자가 아닌 이상기체의 에너지 상관관계를 설명하고 있으며, 금성사, 상문연구사, 중앙교육진흥연구소, 대한교과서에서도 다원자 분자 개념이 나온다. 또 올해 5월 경기도 교육청이 주관한 수능 모의고사 물리Ⅱ 12번 문제에서는 '단원자 분자인 이상기체'라는 문구가 포함돼 있다.

7차 교육과정의 물리 부문을 맡았던 김범기(60) 한국교원대 교수는 “고교 교육과정에서 명확히 단원자만을 다뤄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전체 수험생 영향받아

만약 정답을 바꾸거나 복수의 정답을 인정하면, 2008학년도 입시를 수능 채점부터 다시 해야 하는 사태로 번질 수 있다.

정답을 바꾸면 물리 Ⅱ를 선택해 시험을 본 학생 1만9597명의 등급이 통째로 바뀐다. 상대평가이기 때문이다.

물리Ⅱ의 등급이 바뀌면, 자연계 수험생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물리 Ⅱ를 선택해 2등급을 받은 학생은 이 과목을 치른 학생들끼리 경쟁해 2등급을 받은 것이지만, 각 대학에 지원을 할 때는 생물Ⅰ 등 다른 과학탐구 과목을 선택한 학생과 경쟁을 하는 것이 현재의 입시 체제이기 때문이다.

파장이 자연계에서만 끝나는 것도 아니다. 인문계 학생들이 자연계 학과로 지원하기는 어려워도 자연계 학생들이 인문계 학과로 지원하기는 쉽게 만들어놓은 대학이 많다.

또 정답을 번복한다면, 이때는 반대로 이미 수능 성적이 일정 정도 반영된 수시 2학기에서 합격한 수험생이나, 이미 물리Ⅱ에서 높은 등급을 받은 수험생들 중에서 거꾸로 “번복해서는 안 된다”는 소송을 할 수도 있다. 사태가 어떻게 되든 소송은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