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오셨어요? 다행입니다. 남은 표가 딱 한 장뿐이었거든요.”

지난 일요일(16일) 오후 스폰지하우스 광화문. 영화 상영 시작은 30분이나 남았지만, 표는 이미 매진이었다. 13일 문을 연 이 작은 영화관의 개관 기념작품은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重慶森林·1994). 의외였다. 초행자에게는 쉽지 않을 뒷골목에 자리잡은 극장, 또 최신작은커녕 13년 전 홍콩영화에 이렇게 열광하다니. 영화에서 왕정문이 즐기던 올드팝 ‘캘리포니아 드리밍’(California Dreaming)이 새로 생긴 극장 구석구석에, 그리고 이제는 청춘이라고 부르기엔 민망해진 나이의 관객에게도 스며든다. 추억으로 가는 시간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누구나 자기 세대의 영화가 있다. 90년대에 청춘을 통과했던 관객에게는 왕가위의 ‘중경삼림’이 그랬다. 95년 즈음, 지금은 영화를 상영하지 않는 종로 5가 연강홀에서 이 영화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오른다. 보지 않으면 유행에 뒤처질지 모른다는 강박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보다는 실연의 상처에 대한 치유가 먼저였다. 이제는 대가(大家)가 되어버린 왕가위,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스크린을 떠난 레인코트의 임청하, 반대로 이 작품이 첫 주연이었던 어린 금성무, 아직 청년의 홍조를 잃지 않고 흰색 팬티 바람으로 뒹굴던 양조위, 천진난만함의 극치를 보여줬던 왕정문까지. 2007년의 스크린에서도 그들은 여전히 싱그러웠다.

영화 ‘중경삼림’의 한 장면.

스튜어디스 애인을 떠나 보낸 양조위가 물을 뚝뚝 흘리는 젖은 수건을 들고 중얼거린다. “그만 울어. 계속 울기만 할 거야? 강해져야지!” 떠난 그녀를 잊지 못하는 금성무가 유통기한이 다 된 파인애플 통조림을 뜯으며 주억거린다. “기억이 통조림에 들었다면 유통기한이 영영 끝나지 않기를… 만일 기한을 적는다면 만년 후로 해야겠다.” 아직 20대로 보이는 한 여성 관객도 소리 죽여 흐느낀다. 사랑과 실연, 그리고 희망에 대한 두 편의 에피소드로 정의할 수 있는 이 옴니버스 영화는, 그렇게 겨울의 극장을 찾은 여러 세대의 관객을 위로하고 있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중경삼림’에 대한 관객들의 지지가 더 뜨거워졌다는 소식을 극장에서 알려왔다. 주말과 평일 마지막 상영은 전회 매진이란다. 반신반의하며 하루 한두 번 상영으로 시작했던 일정은 이제 하루 4회까지 늘렸고, 여세를 몰아 며칠 뒤 크리스마스에는 스폰지하우스 중앙에서 ‘화양연화’(花樣年華·2000)도 다시 개봉한다고 한다. “가장 좋았던 시절”을 뜻하는, 왕가위·양조위·장만옥의 대표작이다.

간밤 내린 눈으로 광화문의 오래된 빌딩 지붕마다 흰 눈이 소복소복 쌓였다. 서른에는 서른의 사랑이, 마흔에는 마흔의 사랑이, 그리고 쉰에는 쉰의 사랑이 있다고 한다. 다시 광화문에 돌아온 ‘중경삼림’을 위하여, 이제는 청춘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세대를 위하여, 그리고 여전히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당신들을 위하여.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