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전 충남 천안시 두정역 앞. 수도권 전철이 도착하자 출구에서 쏟아져 나온 수백 명의 대학생들이 역 앞에 대기 중이던 학교 셔틀버스에 올라타느라 부산하게 움직였다. 한편에선 학생들이 길게 줄을 서서 좌석버스를 기다리고 있고, 택시 수십 대도 꼬리를 물고 늘어섰다. 총총걸음으로 인파를 헤치며 출근길을 재촉하는 시민들도 뒤섞여 역 주변은 북새통이었다.
수도권 전철의 종착지 천안역 바로 직전인 두정역의 평일 아침 풍경은 매일 이렇다. 오전 8시부터 11시까지 두정역은 대학생 승객들로 몸살을 앓는다. 승강장 계단부터 대합실 광장까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이 같은 진풍경은 대학 수업이 끝나는 오후 시간대에 다시 한 번 연출된다. 김종권(37) 두정역 역무과장은 "하루 이용객 중 80% 가량이 대학생"이라며 "수도권 전철역 직원들이 '도대체 두정역이 어떤 곳이기에 학생 승객이 그렇게 많으냐'고 자주 묻는다"고 말했다.
두정역이 '대학역'으로 탈바꿈한 것은 역과 인접한 천안시 안서동에 대학이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경부고속도로 천안 나들목 부근에 자리잡은 안서동에는 단국대, 상명대, 호서대 천안캠퍼스와 백석대, 백석문화대 등 5개 대학이 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대학을 보유하고 있는 동(洞)이다. '대학생으로 하루가 시작돼 대학생으로 마감하는' 동네라 할 수 있다.
11월 말 현재 안서동의 주민등록 인구는 6800명. 그러나 대학생 수는 단국대 1만1000명, 백석대 1만800명, 백석문화대 5400명, 상명대 5300명, 호서대 4000명 등 모두 3만6500명에 이른다. 대학생 수가 주민 수의 5배를 훨씬 넘는 셈이다. 안서동에는 1978년 단국대를 시작으로 잇따라 대학이 세워졌고, 하숙촌이 들어서면서 젊음과 활력이 넘치는 대학촌으로 빠르게 변모했다.
5개 대학 재학생 가운데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거주 학생이 70~80%에 달하며, 이들은 대부분 자취나 하숙 대신 통학을 한다. 김정희 백석대 관광학부 교수는 “학교별로 통학버스를 운영하고, 전철·기차·고속버스 이용도 편리하기 때문에 수도권 학생들이 별다른 어려움 없이 통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승구(20·단국대 컴퓨터학부)씨는 “서울 상암동 집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강남역까지 가는 시간이 오히려 강남역에서 전철을 타고 학교로 오는 시간보다 길다”고 말했다.
안서동은 현재 400개에 달하는 원룸 건물과 식당 등 각종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3대째 거주해온 윤원희(57)씨는 “1970년대만 해도 산골짜기였고 농사를 짓던 주민들이 대부분이었다”며 “한적한 시골 동네가 대학촌으로 바뀌어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안서동의 가장 큰 특징은 유흥업소가 들어찬 다른 대학촌과 달리 아기자기하고 조용하다는 점. 4~5년 전부터 곳곳에 원룸촌이 들어섰지만 각 대학 간에 거리가 떨어져 있고, 산 등으로 둘러싸인 지형적 조건에다 외지 통학생이 대부분인 탓에 떠들썩한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낮에는 학생들로 북적이지만 저녁에 수도권 학생들이 빠져나가면 학교 주변은 오히려 썰렁해질 정도다. 김은혜(여·20·단국대 동양어학부 1년)씨는 “학생 대부분이 영화관람 등 문화활동을 천안이나 서울에서 즐긴다”고 말했다. 식당주인 김미자(여·48)씨는 “학생들이 밀물처럼 왔다가 썰물처럼 빠지는 게 특징”이라며 “하지만 취업난 탓에 방학 중에도 영어강의나 취업준비를 위해 등교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학이 많다 보니 다른 학교 학생들과의 교류도 활발하다. 학술제 등 큰 행사가 있으면 서로 초대하고 스터디그룹 또는 동아리 모임을 꾸려 다양한 정보도 교환한다. 백경현(20·단국대 1년)씨는 “다양한 친구들과 어울려 대학생활의 낭만을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각 대학들은 지역에서 다양한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대학축제에 주민 참여를 적극 유도하는 등 새로운 ‘대학촌 문화’ 조성에도 신경쓰고 있다. 안서동(법정동)을 관할하는 신안동(행정동)주민센터 안대진 동장은 “안서동은 활력 넘치는 교육의 요람이자 새로운 대학촌 문화를 선도하는 거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