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들어 세계 최대의 '인종 청소'가 자행된 수단 서부의 다르푸르 지역. 수단 정부의 지원을 받는 아랍계 민병대 '잔자위드'와 이 지역 주민의 지지를 받는 흑인 반란세력들 간 싸움으로 주민 20여 만명이 살해됐다고 유엔과 전 세계 구호단체들은 추산한다. 그 살육의 현장을 가까스로 빠져나온 난민 3만4000여 명이 살고 있는 아부 쇽(Abu Shouk) 난민촌은 이 지역 최대 도시인 엘 파셰르의 북쪽 끝에 있었다.
수단 정부의 난민촌 방문허가증에도 불구하고, 2일 난민촌 주변 검문소들은 계속 "안 된다"고만 했다. 차를 이리저리 돌려 간신히 난민촌으로 들어가자, 북쪽으로는 온통 '가축 우리' 같은 집들뿐이었다. 나뭇가지로 만든 골조 위에 국제구호기구가 제공한 비닐 한 장을 씌운 '집'이었다.
아부 쇽 난민촌의 북쪽에 사는 난민 2800명의 옴다(지도자)인 압달라 마디보는 "정부는 난민촌을 떠나라고 밤마다 총을 쏴대는데, 고향에선 잔자위드의 살인과 약탈, 강간이 계속된다"며 "이곳은 생사(生死)를 가르는 마지막 문턱"이라고 말했다. 수단 정부는 난민촌의 존재 자체가 다르푸르 인권유린·학살의 생생한 증거가 되자 난민들의 귀향을 강요한다.
그러나 4년 전 엘 파셰르 북쪽 자발시를 떠나온 무하마드 압바카르는 “친(親)정부 잔자위드 민병대가 들어와 마을 70가구를 다 태우고, 어린이 7, 8명을 끓는 물에 넣어 죽이는 것을 직접 봤다”며 치를 떨었다. 이 난민촌의 제12 지역에 사는 아담 바카르 라마단은 “정부로부터 수수 한 톨 받은 것 없다”고 말했다. 한 국제구호기구의 직원도 “지난 2년간 이곳에서 일하는 동안에 수단 정부가 난민들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것을 못 봤다”고 말했다.
엘 파셰르시 경계만 벗어나면 폭력이 난무한다. 실제로 나무땔감을 찾으러 난민촌 밖으로 나갔다가 잔자위드 민병대에 강간당한 여성들이 부지기수다. 남자들 역시 난민촌 내 흙벽돌 공장에서 막일을 하는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이 실업자다.
세계식량계획(WFP)의 엘 파셰르 사무소도 지난 3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차량 3대를 잔자위드에게 빼앗겼다. 시 남쪽으로 20㎞ 떨어진 또 다른 난민촌인 '잠잠' 난민촌으로 가는 길에서였다. 로랑 부케라 WFP 소장은 "유엔 기구들과 민간단체들이 잔자위드와 30여 개 반군 세력에 강탈당한 차량만도 200대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병대나 반군 조직이나 모두 이동수단이 필요해 국제기구의 차량을 타깃으로 삼기 때문.
유엔은 12월 말까지 평화유지군 2만6000명을 배치해 다르푸르 지역의 안정화에 나설 예정이다. 그러나 수단인들이 유엔군에 거는 기대는 그리 높지 않다. 수단 정부가 유엔군 파병은 받아들였지만, ▲군 이동의 사전 통보 ▲평화유지군 통신의 단절 권한 등 사실상 평화유지 업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알 파셰르 대학의 압드자바르 압둘라 교수는 "수단 정부가 다르푸르 사태 해결을 위해 진지하게 나서지 않는 한, 유엔군의 무장 수준으로는 민병대나 반군을 억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종 갈등’ 20만명 살해
다르푸르 사태… 2003년 2월부터 수단 서부의 다르푸르(49만㎢) 지역에서 벌어진 최악의 학살·인권 유린사태. 심각한 가뭄 속에 토착 흑인(아프리카계) 농민들과 아랍계 유목민이 토지소유권·방목권을 둘러싸고 벌인 대립에서 시작해 인종 갈등으로 발전했다. 아프리카계 반군 세력이 "정부가 아랍계만 지원한다"며 봉기하자 수단 정부의 지원을 받은 아랍계 민병대 '잔자위드'가 투입돼 흑인 농민들을 무차별 살해하고 강간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유엔과 세계 구호단체들은 20만명이 살해되고, 250만명의 난민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