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펭귄관. 수족관에 만들어진 터널 안에서 관람객들이 헤엄치는 펭귄을 구경하고 있다. (photo AP)

일본 홋카이도의 아사히카와시에 있는 아사히야마(旭山) 동물원. 이곳 펭귄관의 터널을 지나다 보면 머리 위로 ‘날고 있는’ 펭귄을 만날 수 있다. 사실은 날고 있는 게 아니라 헤엄치고 있는 것이다. 터널은 대형 수족관에 길을 낸 듯 만들어져 있고, 펭귄들은 수족관을 남극 바다로 삼아 자유롭게 유영하고 있다.

동물원 다른 한쪽에선 30살 먹은 북극곰 ‘간조’가 비행접시 모양의 아크릴 캡슐 안을 쳐다보고 있다. 캡슐 안쪽으론 사람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지상에서 5m 높이에 있는 아크릴 터널 주변을 로프를 탄 침팬지들이 에워싸고 있다. 무엇이 그리 궁금한지 터널 안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사람은 동물을, 동물은 사람을 관람한다.

1967년 문을 연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인구가 30만명밖에 안 되는 소도시에 세워진 시립동물원이다. 10년 전만 해도 관람객이 26만명에 불과한 데다 재정 적자가 쌓여 시의회가 폐쇄하려던 곳이다. 판다나 코알라 같은 희귀한 ‘스타’ 동물 한 마리 없다.

한데 이곳이 지난해 300만명이 넘는 관람객을 유치, 도쿄의 우에노 동물원을 제치고 ‘일본 최고의 동물원’으로 탈바꿈했다.

비결은 바로 ‘동물 전시’의 발상 전환에 있었다. 이곳 수의사 출신인 고스케 마사오(59)씨가 동물원장으로 취임한 뒤 철창 안에 갇힌 동물을 보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노는 동물의 행동을 체험하도록 했다. ‘행동 전시’였다.

최근 방한한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고스케 원장은 “종(種)마다 진화 과정을 통해 생존에 유리하도록 획득한 행태를 갖는다”며 “야생 동물의 이런 매력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사람들을 동물의 팬으로 만드는 게 프로 사육사의 목적이자 동물원의 역할”이라고 했다.

펭귄도 사람처럼 추운 겨울이면 살이 찌고 지방질이 쌓이고 혈압이 올라가는 성인병 증세를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매일 아침 30분간 걷기 운동을 하는 펭귄을 사람들이 만날 수 있도록 했다. 수조에 물을 채워 바다표범이 마음껏 놀게 한 뒤 사람들이 수조 사이로 난 통로를 다니게 했다. 바다표범도, 사람도 함께 행복해졌다. 작지만 큰 변화였다.
이 동물원은 지난해 일본에서 각종 경제단체가 주는 경영자상을 휩쓸며 '창조 경영'의 모범 사례로 떠올랐다. 올해 초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시 '창의 시정' 보고회장에서 이 동물원의 사례를 말했는가 하면,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주주총회에서 "일본의 아사히야마 동물원 같은 삼성전자가 되겠다"고까지 했다.

이렇게 동물의 신비한 능력과 행동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는 ‘인리치먼트(Enrich ment)’는 동물원의 세계적 추세다. 학술용어로는 ‘동물 행동 풍부화’. 동물들이 마음대로 먹고 놀며 행복해 하는 환경 조성을 전제로 한다. 그것을 통해 사람들은 ‘보는’ 게 아니라 ‘체험’할 수 있게 된다.

동물원의 개념도 시대와 함께 바뀌었다. 19세기 설립 당시의 동물원을 동물들이 총출동하는 ‘서커스’ 개념으로 본다면, 20세기 동물원은 자연생태형이라 할 수 있다. 21세기 들어서면서 점차 동물원이 아프리카 밀림에 사는 ‘동물들의 일상 생활’을 최대한 이끌어내 현장 체험하게 하는 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동물원의 주인공도 점차 ‘관람객’이 아니라 ‘동물’로 바뀌어갔다.

경기도 용인 삼성에버랜드의 권수완 동물원장은 “동물원의 기본 개념은 인간이 동물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걸 알리는 것”이라며 “그러려면 사람들이 동물원에 오도록 해야 하고, 동물 세계와 인간 세계를 잇는 ‘대사’나 다름없는 사육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동물원 운영 방식의 변화는 이곳을 찾는 관람객 수가 급감하는 자체적 문제점 해결에서 시작됐다. 동물원에 온 사람들은 ‘왜 이곳 동물들은 내가 알던 것보다 못할까’ 하며 불만부터 내비쳤다. 아사히야마 동물원 이야기를 다룬 책 ‘펭귄을 날게 하라’에도 이런 대목이 나온다. “시민들이 동물원을 외면하는 이유는 재미가 없기 때문이야. 호랑이나 사자는 잠들어 있지, 독수리나 솔개 같은 맹금류는 철창 안에 갇혀 있으니 따분할 수밖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을 것을 찾기 시작했고, 결국 사육사만이 알고 있는 동물의 습성이나 취향에 대해 안내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오게 된 것이다. ‘보는 동물원’에서 ‘체험하는 동물원’으로의 변화는 일본만의 상황이 아니다.

경기도 용인의 삼성에버랜드는 지난 4월 ‘프렌들리 몽키밸리’란 테마 공간을 열었다. 오랑우탄, 침팬지, 다람쥐 원숭이 등 13개 종, 140여마리의 유인원과 원숭이가 산다.

‘폐허가 된 우주개발센터를 찾아온 영리한 원류들이 인간과 함께 공존해 살아간다’는 테마를 기본으로 한다. 아닌 게 아니라 너무 가까이에 있어 영화 ‘혹성탈출’을 떠올리게 한다.

이곳에선 쇠창살 우리에 갇힌 원숭이 대신 탁 트인 야외 공간에서 뛰어다니는 원숭이들을 만날 수 있다. 권수완 동물원장은 “원숭이의 다양한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사육사들이 기구나 로프를 만들어 아프리카 정글을 재현했다”고 했다.

손가락보다 조금 큰 새끼 원숭이를 등에 업은 엄마 다람쥐 원숭이들은 손에 닿을 것 같은 가까운 거리에서 뛰어다녔고, ‘복란이’라는 오랑우탄은 20여미터 높이의 철근 구조물을 나뭇가지 삼아 공중줄타기를 했다.

통유리를 통해 원숭이를 관찰할 수 있는 실내 전시장. 마머셋과 망토원숭이, 긴팔원숭이들이 오글오글 모여 있었고 온천욕을 즐기는 일본원숭이는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침팬지 버블’은 지름 1m 크기의 투명한 반구 유리면을 통해 침팬지를 가까운 곳에서 관람할 수 있게 했다. 유치원생 한 명이 통유리 앞에서 “어, 쟤네가 우리를 쳐다보네”라며 깔깔거리고 웃었다.

권수완 동물원장은 “동물원의 고유 목적은 종을 보존하고 사람을 교육시키고 휴식하게끔 하는 등 여러 가지가 있다”며 “동물들의 삶을 궁금해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그들의 요구에 맞게 동물들의 삶을 재미있게 전달하는 게 중요해졌다”고 했다.

동물원의 관람 태도는 나라별로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유럽 지역의 동물원에선 야생 생태 보존을 최우선으로 한다면 미국에선 재밋거리를 강조한다. 반면 아시아인은 ‘잠자고 있는 동물’에 대해 덜 관대해서 동물이 싸우거나 ‘쇼’ 같은 볼거리를 제공해야 좋아하는 편이다.

때문에 아시아 지역의 동물원 운영 행태를 놓고 ‘볼거리’만 강조한다며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다. 맹수에게 소나 말 같은 먹이를 던져주며 ‘사냥 쇼’를 벌인다는 중국 쓰촨성(四川省)의 한 동물원 사례가 알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1994년 세계 최초로 ‘야간 동물원’ 개념을 시작한 싱가포르의 ‘나이트 사파리(Night Safari)’는 서구에서도 부러움을 사는 곳이다.

삼성 에버랜드의 앵무새. (photo 유창우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 일본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펭귄들. (photo AP) / 일본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북극곰이 캡슐 안의 사람들을 보고 있다. (photo AP)

지난 9월 밤 9시경 이곳을 찾아가 꼬마 전차에 오르자 안내원이 입을 열었다. “자, 여러분, 이제 동물들을 만나러 가볼까요? 그런데 이 친구들은 빛을 싫어한답니다. 잠자는 녀석들도 있고요. 그러니 카메라 플래시는 절대 안 돼요. 아시겠죠?”

초록과 파랑의 낮은 조명 아래 아프리카 초원과 밀림을 혼합한 듯한 정글이 펼쳐졌다. 잠시 후 오른쪽에 아기 사슴들이 흩어져 서 있었다. 30마리는 족히 돼 보였다. 사슴들은 멍하니 서서 지나가는 전차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컷 사자 네 마리는 바로 눈앞에 있는 듯했다. 꼬마 전차엔 방탄 유리도 없지만 동물과 인간 사이에 나 있는 물길 덕분에 안전엔 문제가 없단다.

하이에나 두 마리가 나무의 높은 곳을 날 듯이 지나가는가 하면, 기린 한 마리가 자기 키만큼 높이 매달아놓은 풀을 정신없이 뜯어먹고 있었다. 수십 마리의 박쥐를 눈앞에서 구경할 수 있는 ‘맹그로브 워크’도 인기 코스다. 관람객은 3㎞가 넘는 구간을 전차를 타고 40분여 돌게 된다.

110여종 1200여마리의 이곳 동물들은 대부분 야행성이다. 동물원은  2000여개의 전등을 이용해 달빛과 비슷한 어두컴컴한 조명을 만들었다.

싱가포르 ‘나이트 사파리’를 기획한 린 드 알위스는 지난해 “우리의 목표는 밤이라는 상황에서 야행성 동물들의 ‘나이트 라이프’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싱가포르 관광공사가 뽑은 최고 관광지에 14번이나 오른 이곳을 찾는 관람객은 연간 250만명에 이른다.

누구나 어린 시절 동물원에서의 추억 한 가지쯤은 갖고 있을 법하다. 호랑이나 사자만 직접 봐도 신기해 하던 때가 분명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의 삶을 좀 더 가까이에서, 제대로 알고 싶어하는 관람객들 때문에 ‘전시’만으론 살아남을 수 없게 됐다.

삼성에버랜드 동물원 기획팀의 허광석 대리는 “야생 환경과 동물원 사이에 환경 차이가 너무 크면 동물들도 견디기 힘들어한다”며 “동물에게서 자연스러운 행동을 유발하려면 그들의 몸과 마음부터 행복하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했다. 이제 동물원의 화두는 ‘야생 환경 보존’에서 ‘동물의 행복’으로 옮겨가고 있다. 동물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관람객도 모이고, 돈도 벌 수 있는 세상이다. ▒

동물원의 역사

1752년 오스트리아에서 처음 개장  
우리나라는 1909년 창경원이 시작

1862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동물공원의 다비트 프리드리히 바인란트 관장은 “프랑크푸르트·드레스덴·쾰른·함부르크 등에 있는 동물공원을 처음 세운 사람은 군주도, 학자도, 교사도 아니었다”며 “그것은 살아있는 자연을 보고 싶은 무의식적 열망에 이끌렸던 도시에 살던 대다수의 시민”이었다고 했다.

최초의 근대식 동물원은 1752년 오스트리아 빈에 설립된 쇤부룬 동물원으로 알려져 있다. 그 뒤로 유럽의 도시들은 부를 과시하는 차원에서 동물원을 만들기 시작했다. 파리의 공공동물원(1793년), 런던 동물공원(1828년), 암스테르담 동물공원(1843년), 베를린 동물공원(1844년), 미국의 센트럴파크(1862년) 같은 공원이 만들어졌다.

초기의 동물원이 ‘어떻게 하면 좀 더 다양한 동물을 유치할 수 있을까’에 집중했다면, 점차 동물 수보다 재밋거리를 살린다거나 야생 상태 보존을 중시하는 개념으로 바뀌었다.

동양 최초의 동물원은 1882년 개장한 일본 도쿄의 우에노 동물원이다. 우리나라에 생긴 최초의 동물원은 1909년 11월 1일 문을 연 창경원이다. 당시 일제는 조선 왕궁인 창경궁을 망가뜨리고 350여마리의 동물을 모아 창경원을 세웠다. 그곳의 동물들은 1984년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으로 옮겨져 명맥을 잇고 있다.

[☞ weekly chosun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