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문 분석하고 문제 추리하기
신유목주의는 기본적으로 탈 영토주의를 기본적인 특징으로 하고 있다. 과거 정주사회에서는 모든 갈등이 영토화를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근대사회까지의 ‘발전’이란 영토의 증진 혹은 영토의 가치 증진이라는 개념과 다를 바가 없었다. 반면에 신유목사회는 ‘영토’로부터의 일탈 즉 ‘탈영토화’로부터 출발한다. 현재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정보화를 필두로 한 과학기술 발전과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확대와 심화가 가져오고 있는 세계화는 인간으로 하여금 영토를 벗어나게 하는 중요한 추동력이다.
신유목주의의 전형적인 속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인식론적인 측면에서 신유목주의는 고체가 아니라 유체를 중심으로 보며, 입자나 점과 같이 고정되고 완결된 것을 모든 세계의 기본 요소로 보기보다는 흐름 그 자체를 실재 그 자체로 보고 고정된 것을 기본으로 보지 않음으로써 변화를 기본으로 보는 관점을 취하고 있다. 둘째, 가치적인 측면에서, 구래의 영토주의에서 추구되던 안정적이고 영원한 것, 동일하고 불변적인 것에 대한 추구와는 달리 늘 생성(창조성의 발현)과 이질성(다양성 또는 개성)을 중시한다. 정치·사회적으로 본다면 이것은 고전적인 산업민주주의에서 중시되던 다수지배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면서도 상대적으로 경시되고 있었던 소수자의 보호 원칙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문제를 일반화하여 풀어나가는 데에 중점을 두었던 근대적 과학 및 이론과는 달리 신유목주의는 오히려 항상 문제를 제기하고 특수화하여 여기에 대한 창의적인 풀이 시도를 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넷째, 신유목주의는 국가적인 사유에 반하는 ‘대항사유’를 제기한다. 대항사유란 언제나 지배적인 것, 주류적인 것, 다수적인 것에 반하며, 보편적 주체가 아니라 다양한(특이한)소수파들과 연대하여, ‘특이한 인종과 결연’하여 이미 정해진 것을 변화시키는 힘이다. 다섯째, 신유목주의는 근대산업사회의 지고의 가치라고 할 수 있는 공리주의를 부정하며, 최소비용에 의한 최대효과 추구의 방향을 취하지 않는다.
(① )
유목주의는 또한 항상 모든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가능성을 준비한다.
결국 신유목주의의 조직원리는 중앙집중적이고 교과서에 기초한 조직보다는 복수의 중심을 갖는, 중심이 너무 많아서 하나의 중심을 말하는 것이 무의미한 조직을 지향한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카스텔이 정의하는 일련의 상호 연결된 노드를 통하여 모든 방향으로 열려 있으며 모든 공간으로 접속되어 있는 네트워크와 일치한다. 하나의 원리에 의하여 통일되고 체계화되어 있는, 따라서 그만큼 닫혀 있을 수밖에 없는 운영원리보다는 이질적인 것들이 얼마든지 접속될 수 있고 접속되는 양상에 따라 운영 자체가 가변화되는 유동적인 혹은 유연한 운영원리가 신유목주의의 운영원리이다.
문제 윗글의 내용 전개를 바탕으로 ( ① ) 안에 들어갈 내용을 400자 이내로 추리해 쓰시오.
●생각넓히기: 유목주의(노마디즘)
노마드는 ‘유목민’ ‘유랑자’를 뜻하는 용어로,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가 그의 저서 ‘차이와 반복’(1968)에서 노마드의 세계를 ‘시각이 돌아다니는 세계’로 묘사하면서 현대 철학의 개념으로 자리잡은 용어이다.
노마드란 공간적인 이동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버려진 불모지를 새로운 생성의 땅으로 바꿔 가는 것, 곧 한 자리에 앉아서도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어 가는 창조적인 행위를 뜻한다. 철학적으로는 철학·문학·정신분석·신화학·수학·경제학 등 학문 분야를 넘나들며 새로운 삶을 탐구하는 사유의 여행을 의미한다.
소비와 생산의 영역이 합해지는 프로슈머의 개념도 유목주의에 포함할 수 있다. 프로슈머란 생산자인 프로듀서(producer)와 소비자인 컨슈머(consumer)를 합한 신조어로, 앨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에서 처음 제시한 용어다. 토플러는 최근 저서 ‘부의 미래’에서도 스스로 생산해서 스스로 소비하는 프로슈머의 등장을 ‘부의 혁명’의 중요한 현상으로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 프로슈머 경제가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새로운 백만장자가 수두룩하게 나타날 것이며, 프로슈머는 앞으로 다가올 경제의 이름 없는 영웅”이라고 전망했다.
프랑스 사회학자 마페졸리의 지적처럼 생활공간이 ‘관계론적 개념’으로 재편되면서 가족·친척과 같은 고착적 특성과는 무관한 일·취향·사건 등을 중심으로 뭉쳤다 흩어지는 ‘새로운 부족의 시대’를 맞고 있는 것이다. 이런 네트워크 공동체에서는 나에게 맞는 것, 새로운 것, 싼 것, 편한 것을 찾아다니며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똑똑한 소비자가 생산자를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다. 이들이 생산의 영역을 침범해 프로슈머의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디지털 아줌마’의 힘은 프로슈머의 전형을 보여준다. ‘디지털 아줌마’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왕래하며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소비·생산·확산시키는 기혼 여성을 뜻하는 개념이다. 한국 소비자 중 가장 힘센 사람이 이들 디지털 아줌마이고, 여성의 경제·사회 활동 증가와 함께 이들의 힘은 폭발적으로 커질 전망이다. 지난 1년간 한국 전업주부의 인터넷 사용비율은 37.3%에서 49.4%로 증가해 가장 증가 속도가 빠른 집단으로 떠올랐다. 현재 국내에 개설된 2000만개의 블로그 중 아줌마 블로그가 10%인 200만개 정도이다.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전문지식으로 무장한 이들 ‘디지털 아줌마’는 네트워킹 마케팅 등을 통해 소비자에서 판매자·생산자로 변신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두산백과사전’ ‘주간조선 1936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