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FC서울 사령탑을 지내고 중국 프로축구 무대로 떠난 이장수(51) 감독이 이끄는 베이징 궈안이 아깝게 중국 슈퍼리그(C리그) 우승컵을 놓쳤다. 베이징 궈안은 14일 밤 산둥 루넝과 리그 최종전에서 브라질 용병 티아구 호노리오의 페널티킥 결승골로 1대0 승리를 거둬 15승9무4패(승점 54)로 올 시즌을 마감했다.

연합뉴스 11월15일 보도

이장수와 리장주(李章洙).

동일 인물이다. 하지만 이름의 무게감은 천양지차다. 이장수가 K리그에서 바람 잘 날 없는 시련의 축구 지도자였다면, 리장주는 중국 대륙을 쥐락펴락하는 명장 중의 명장이다.

이장수 감독이 올 시즌 또다시 중국 대륙을 들썩였다. 이 감독은 지난해 12월 베이징 궈안의 지휘봉을 잡았다. 베이징은 명색이 중국 심장부에 위치한 팀이지만 우승권과는 거리가 먼 그저 그런 팀이었다. 국가대표 선수가 고작 한 명뿐인 ‘외인구단’이었다.

다들 설마했다. 하지만 설마가 사람 잡았다. 이 감독은 베이징을 중국 C리그(수퍼리그)에서 12년 구단 역사상 최고 성적인 2위(승점 54·15승9무4패)에 올려놓았다. 우승을 차지한 창춘(55점·16승7무5패)과는 승점 1점 차이였다.

아쉽게 우승은 못 했지만 ‘우승보다 값진 2위’란 찬사가 이어졌다. 중국 축구팬들은 “역시 리장주”라며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지난 14일 막을 내렸지만 지금까지도 ‘리장주 열풍의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CCTV와 북경 방송에선 이 감독과 베이징의 성공 비결을 조명하는 ‘이장수 특집 프로그램’을 편성했다.

국내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이장수 감독이 중국에서 펄펄 나는 이유는 뭘까?

이 감독은 중국에서는 엄연한 외국인 감독이다. 하지만 믿음의 축구가 ‘리장주 신드롬’을 낳았다. 국내의 경우 구단 경영진을 비롯한 프런트(사무국 등 지원조직)의 입김이 세다. 박항서 전 경남 감독도 최근 경영진과의 불화로 사퇴했고, 모 구단 사장은 스스럼없이 “나는 감독의 선수 기용에 간섭을 한다”고 밝힐 정도다. 이 감독도 피해자였다.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충칭과 칭다오에서 두 차례나 FA컵을 차지하며 중국 대륙을 호령했다. 모든 것을 이뤘다고 판단한 그는 2004년 금의환향하며 전남 드래곤즈의 지휘봉을 잡았다. 취임 첫해에 팀을 플레이오프에 올려놓았지만 프런트와의 불화로 사퇴했다. 이듬해에는 FC 서울과 2년간 계약, 2005시즌 컵대회 우승과 4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며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성적을 거뒀으나 재계약 기간 문제로 다시 마찰을 빚었다. 그리고 한국 생활을 접었다.

베이징 구단에선 어떠한가. 이 감독의 지휘권을 침범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주기 때문에 팀을 입맛대로 요리할 수 있다.

용병 보강도 마찬가지다. 올 시즌 여름 이적시장에서 브라질 출신 피아그를 영입하는 데도 구단은 믿음으로 화답했다. 피아그는 후반기 리그에서 9골을 터트리며 이 감독의 기대에 보답했다.

선수들과의 찰떡 호흡도 빼놓을 수 없다. 이 감독은 중국 프로축구 사령탑 중 유일하게 선수들과 24시간 호흡하며 동고동락했다. 구단에서 별도로 집을 마련해 줬지만 거의 살지 않았다. 감독을 너무 어려워하는 한국프로축구에서는 적용하기 어려운 방식이었지만, 중국에서는 외국인 감독이라는 점 때문에 선수들의 거부감도 없었다.

선수들에게 클럽 하우스는 창살 없는 감옥이다. 하지만 훈련 이외의 시간엔 권위의 상징인 감독이 선수들과 장난을 치며 함께 생활하다 보니 피를 나눈 가족 이상으로 가까워졌다. 덕분에 그는 선수들로부터 명예로운 별명을 얻었다. ‘따거(대형)’다. 선수들은 이 감독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정도다.

반면 그라운드에선 카리스마의 화신으로 돌변한다. 중국 선수들은 외국인 감독이 처음 팀을 맡으면 길들이기를 한다. 이 감독도 피해갈 순 없었다. ‘충칭의 별, 칭다오의 별’은 중요치 않았다. 기 싸움이 대단했다. 당시 이 감독은 당근 대신 채찍으로 ‘역 길들이기’를 했다. 지휘권에 정면 도전한 선수는 가차 없이 응징했다. 2군으로 내려 보내거나 출전 엔트리에서 제외했다.

일례로 지난 시즌 주전 스트라이커 고마웨이는 베이징의 간판스타였다. 하지만 규정 위반을 한 그에게 이 감독은 같이할지 말지를 선택하라고 최후통첩을 보냈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결국 그를 방출했다. 고마웨이가 쫓겨나자 그라운드에서 이 감독의 말은 곧 법이 됐다.

마지막으로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처세술도 이 감독의 ‘차이나 드림’에 날개를 달게 했다.

중국 프로축구에서는 음성적으로 승부조작이 존재한다. 중국의 한 언론은 올 시즌 최종전에 대해서도 승부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최종 라운드에서 베이징이 산둥을 꺾고, 창춘이 비기거나 패하면 이 감독이 우승컵을 거머쥘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창춘이 원정에서 선전을 4대1로 격파하자, 창춘의 승부조작에 대한 의혹이 쏟아졌다. 원정에서 이처럼 대승을 거두기는 힘들다는 것이었다.

이 감독도 처음 충칭의 지휘봉을 잡았을 때 승부조작에 대한 숱한 유혹을 받았다. 그때 이 감독은 “40억원을 주면 하겠다”고 했다. 40억원이라는 돈은 바로 강력한 거부의 표시였다. 이후 검은 그림자는 “목숨이 두 개냐”며 생명까지 위협했다. 이 감독은 끝내 유혹과 위협에 흔들리지 않았다.

이 감독은 ‘한류’로 포장된 웬만한 연예인 스타의 인기를 넘어선 지 오래다. 그는 13억 중국인들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으며 ‘축구 한류’의 전도사로 한국 축구의 위력을 뽐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