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특별기획 드라마 ‘태왕사신기’에서 여주인공 ‘수지니’(이지아)는 거의 매회 술병을 끼고 나온다. “나는 술을 많이 먹어도 취하지 않는다”며 그녀는 술잔을 이용하지도 않고 병나발을 분다. 술병도 보기와 달리 의외로 속이 깊다는 ‘고려청자형’이다. 남자 주인공 ‘담덕’(배용준)은 술을 좋아하는 ‘수지니’와 결혼하기 위해 술로 그녀를 유혹한다. 배경이 사극이다 보니 술을 매개로 여성을 유혹하는 고전적 수법을 쓰고 있다. ‘미드’에서 상습적으로 술을 먹는 장면은 대개 음흉하거나 무능력한 알코올 의존 인물을 묘사할 때 쓰인다. 하지만 ‘한드’에서는 선한 사람이건 악한 인간이건 상습 음주 장면에 차이가 없다. 어찌됐건 우리나라 드라마는 이제까지 남자 주인공의 고민이 시작되면 바로 술병이 소품으로 등장하는 불문율을 잘 지켜왔다. 여기에 ‘태왕사신기’가 약간 변형을 시도한 것이 여자 주인공의 본격적인 음주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의학적으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알코올에 상당히 취약하다는 점이다. 우선 알코올이 간에서 분해될 때 독성물질을 유발하는 항체가 여성이 남성보다 많다. 같은 양을 마셔도 여성에서 알코올 독성물질이 더 많이 생긴다는 의미다.
여성의 몸은 남성보다 같은 체중이더라도 지방의 비율이 높다. 마신 알코올은 지방에 축적되는데, 이 말에는 알코올이 여성의 몸에 체류하는 시간이 더 길다는 뜻이다. 남성과 여성 똑같이 같은 양의 술을 동일한 기간 상습적으로 마셨을 경우, 이런 연유로 여성이 더 빨리 알코올 중독 환자가 된다. 술을 매일 본격적으로 마신 이후 남성은 10~15년 후에 알코올 중독자가 되는데, 여성은 5~7년 밖에 걸리지 않는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술 상무’ 길에 들어섰다면, 남성은 30대에 알코올 중독자가 되고, 여성은 20대 후반에 환자 신세가 된다. 알코올로 인한 피해도 여성에게 더 심각하게 나타난다. 같은 양의 알코올을 마시더라도 지방간 정도가 더 심하게 오고 빨리 온다. 고농도의 알코올은 여성 관련 호르몬 분비도 교란시켜 수태 기능도 떨어뜨리고, 유산 가능성도 높인다.
여성 몸은 월경과 임신 기능이 있어 남성보다 더 복잡한 생리구조를 가지고 있다. 기계로 치면 여성 몸은 옵션이 많은 전자식이고, 남성 몸은 단순 기계식인 셈이다. 따라서 과도한 알코올 흡수는 여성의 몸에 고장을 낼 확률이 높은 것이다. 요즘 시중에는 간 건강에 좋은 ‘UDCA’ 성분 약이 많이 나와 있는데 광고 모델로 남성을 쓰고 있다. ‘태왕사신기’를 보면서 ‘간장 약’ 광고 모델을 이제 여성으로 바꾸는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뜬금없이 든다.
(의학전문기자·의사 doctor@chosun.com)
〈금주의 메디컬 CSI 팀원: 남궁기·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교수, 연종은·고려대구로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간 건강을 위한 메디컬 CSI 권고 사안
①많은 국민이 시청하는데 병나발은 좀 그렇지 않은가. ‘수지니’는 술잔을 이용하여 마시는 양을 조절할 것.
②드라마는 술이 술술 넘어가는 장면으로 시청자의 음주 욕구를 자극하지 말 것.
③술 자리에서 여성에게 ‘핸디캡’(handicap)을 주고, 다들 적당히 마실 것.
④상습 음주로 알코올 중독이 되가는 사람은 ‘술이 웬수’라고 생각하고 조기에 치료를 받을 것.
⑤3000만 술 들었을 때, 우리는 깨어 생산적인 일에 몰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