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놈 소리 많이 들었죠. 그럼 뭐 어때요? 저 자신을 100% 믿으니까 꿋꿋이 이 길을 걸어 온 겁니다.”

40년 가까이 온갖 발명에 매달려 온 그는 칠순을 맞은 지금도 작업실에서 '연구 중'이다. 정선영(鄭善永)㈜제이포엠(www.biovital.co.kr) 사장은 "사장 대신 발명가로 불러 달라"고 했다. 정씨는 1972년 진공상태를 이용해 주조(鑄造)하는 진공금형(金型·금속으로 만든 거푸집) 등으로 과학기술전람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건강속옷, 전동 높낮이 조절 책상, 세계시계 등을 발명해 여러 특허를 따냈다.

어린 시절부터 기발하다 못해 엉뚱한 상상력을 가졌다. 경남 합천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땐 장독으로 우주선을 만들어 달나라로 갈 계획을 세운 적도 있다”고 껄껄 웃었다. 본격적으로 발명에 뛰어든 것은 고교 졸업 후 서울역에서 일하던 시절. 그는 “디젤 기관차가 처음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역사적’ 순간을 보고는 ‘한국을 과학 강국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정씨의 발명품은 종류가 많지는 않다. 하지만 그는 단일 품목으로 세계 최다 특허를 획득한 기록을 갖고 있다. 그 단일 품목은 남성용 건강속옷(속칭 ‘정력팬티’). 정씨는 이 발명품으로 136개국에 특허를 출원해 100개국에서 특허를 따냈다. 그리고 발명 30년이 넘은 지금도 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그는 1978년 일본 여행 중 남성들의 원기 증진을 위해 하체 온도를 평균체온보다 낮춰 주는 특수 헬스클럽을 가 보곤 무릎을 쳤다. 그러곤 넉 달씩이나 속옷을 주무른 끝에 건강속옷을 만들어 출시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그해에만 내수 20억원, 수출 25만 달러의 큰 성과를 거뒀다. 1981년에는 스위스발명대회에 출품해 특별 인기상을 수상했고 미국 ABC 등 방송사와 유럽 매스컴들의 큰 주목도 받았다. 1994년에는 그의 건강속옷이 ‘서울 천년 타임캡슐’ 수장품 중 하나로 선정돼 땅 속에 묻혔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 이듬해 속옷 제조 대기업들이 정씨의 속옷이 ‘효과 없는 제품’이라며 사기죄로 고소했다. “수년간 법정 싸움을 벌인 끝에 무죄 판결을 받았죠. 하지만 소송하면서 빚은 불어났고 특허권이 채권자들에게 넘어가 파산했죠.”

그는 위기를 가족들 도움으로 이겨내며 서서히 일어섰다. 어렸을 땐 “하필이면 그 많은 발명 중에 속옷 발명이냐”고 아버지를 창피해하던 딸아이는 이제 ‘속옷 박사’가 돼 아버지 곁에서 일을 돕는다. 그는 “죽기 전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등산로와 자석 신발 등 꼭 5개만 더 발명해 놓고 가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