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신동승 부장판사)는 콧수염을 길렀다는 이유 등으로 징계를 당한 경찰관 박모씨가 서울지방경찰청장을 상대로 낸 정직 3개월 처분 취소 소송에서 "콧수염이 징계 사유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고 8일 밝혔다.  -연합뉴스 11월 8일 보도

정직처분 취소 소송을 낸 주인공은 서울 동작경찰서에 근무하는 박동성(47) 경사다. 박 경사가 정직이라는 중징계를 받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콧수염’이 아니었다. 문제는 ‘오토바이’, 정확하게 그의 표현대로 하자면 ‘이륜자동차’때문이었다.

박 경사는 지난 4월 9일 휴가를 내고 전국이륜문화개선운동본부 회원 4명과 함께 고속도로 이륜자동차 통행 금지에 항의하며 오토바이를 타고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고속도로순찰대와 옥신각신하는 과정이 동영상에 담겨 방송에 소개됐는데, 당시 그가 현직 경찰관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문제’가 커졌다.

경찰이 처음 그에게 내린 징계는 파면이었다. 보도 직후 박 경사가 속해있던 관악경찰서는 징계위원회를 열어 ▲법 위반 사실을 알면서 고속도로에 진입했고 ▲콧수염을 길렀으며 ▲이름표를 부착하지 않고 근무했다는 이유로 파면 처분을 내렸다.

박 경사는 한 달 뒤 파면처분 취소 소청을 냈다. 바이크 라이더들은 ‘뭉치아빠’(박 경사의 인터넷 카페 아이디)를 돕기 위해 후원회를 결성했고, 2500여명이 탄원서에 서명을 하여 제출했다. 결국 중앙인사위원회 소청심사위원회에서 징계 수위가 정직 3개월로 낮춰졌고, 박 경사는 지난 7월 복직했다. 그는 지난 8월 정직처분 취소 청구소송을 다시 냈다.

박 경사는 “이륜자동차를 타고 고속도로에 들어갈 때 어느 정도 징계는 감수하고 들어갔다”며 “하지만 그 수위가 지나치다고 생각해 소송을 낸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고속도로에 들어간 것은 즐기기 위해서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헌법소원을 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떤 법에 의해서 처벌을 받게 될 피고인이 헌법소원을 낼 수 있기 때문이었죠. 이륜자동차의 고속도로나 자동차전용도로 진입을 금지하고 있는 것은 명백히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소신 때문입니다.”

박 경사는 “법적으로 불이익을 당할 것이 뻔한 상황에서 다른 이에게 그런 부담을 주기 싫어서 직접 고속도로에 들어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건설교통부에서 형식승인과 환경검사를 통해 승인한 이륜자동차를 취득세까지 내고 구입한 이용자들이 차별을 받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박 경사가 ‘이륜자동차’를 탄 것은 불과 2년 전부터다. 군에서 제대한 뒤 1986년 경찰에 투신한 그는 1988년 파출소에 배치되면서 순찰용 모터사이클을 타기 위해 오토바이를 처음 배웠다. 개인적으로 ‘이륜자동차’를 타기 시작한 것은 2003년부터.

스쿠터를 타고 출퇴근을 하던 그는 2005년 봄 2종 소형면허를 땄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할리데이비슨 스포스터883 모델을 구입했다. 현재 그의 ‘애마’는 할리데이비슨의 1995년식 ‘다이나 와이드글라이드’ 모델이다. 동호회 활동을 하던 그는 각종 게시판을 통해 바이크 라이더들의 권리가 침해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문제가 있다”는 생각에 행동에 나섰다.

그는 2005년 11월 고등학생인 둘째 아들의 이름으로 헌법소원을 냈다. 면허를 딴 지 90일이 안 된 사람만 헌법소원을 할 수 있다는 규정 때문에 당시 원동기 면허를 딴 아들의 이름으로 냈던 것이다. 이듬해 30대 가정주부의 헌법소원까지 이어졌지만, 헌법재판소는 기각했다.

“8명의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만장일치로 기각을 한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보행자나 우마차가 못 들어가게 하기 위해 만든 도로교통법에 이륜차를 살짝 끼워넣은 겁니다. 이륜차가 자동차전용도로에 들어갈 수 없다는 헌재의 결정은 이륜차에 대해 자동차로서는 사망선고를 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도 자동차와 똑같이 세금을 계속 걷는다면 죽은 사람에게 군포를 징수하던 백골징포(白骨徵布)와 다를 게 뭐가 있겠습니까?”

이륜자동차 문제로 불거진 논란의 불씨는 콧수염과 명찰로 튀었다. 박 경사는 2005년 봄부터 콧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동안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다가 고속도로 진입 사건으로 새삼 문제가 된 것이다.

“콧수염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용모와 복장을 단정히 해야 한다는 규정은 있지만, 콧수염 자체를 금지한 내용은 없습니다. 관리를 못 해서 지저분하다면 문제겠지만, 관리를 하면서 개성을 살릴 수는 있는 것 아닙니까.”

결국 재판부는 ‘콧수염’에 관해서는 박 경사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박 경사는 현재 콧수염을 기르지 않고 있다. ‘자성의 의미’도 있지만, 콧수염을 보고 사람들이 너무 잘 알아보기 때문에 불편해서 깎았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박 경사는 명찰을 달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은 부분에 대해서는 조만간 항소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