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김용철 변호사의 의혹 제기 이후 거센 후(後)폭풍을 겪고 있다. 경영 일선에서는 해외 대형 사업 입찰에서 경쟁사들의 역(逆)선전에 고전을 호소하고 있고, 당장 내년도 경영계획 수립도 탄력을 잃었다. 물갈이와 조직 쇄신을 위해 예년보다 앞당기려던 사장단·임원 인사 역시 불투명해진 상태다.

내년 창립 70주년을 맞아 조직을 재정비하고 새 분위기를 불어넣으려던 삼성의 계획은 당분간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이병철 창업주 추모행사 축소

삼성 관계자는 “19일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이병철 회장 20주기 추모행사를 갖고 용인 에버랜드 묘소 참배 계획을 잡았지만 호암아트홀 행사는 취소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20주기에 맞춰 열리는 경남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 이병철 회장 생가(生家) 개방 행사에도 삼성그룹에서는 이중구 삼성테크윈 사장, 한용외 삼성사회봉사단 단장 등 일부만 참석한다. 이병철 회장의 자서전인 ‘호암자전’ 개정판 출간도 취소했다. 12월 5일로 계획돼 있는 이건희 회장 취임 20주년 행사도 현재로서는 정상 진행하기가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대폭 인사설 물 건너가

계열사 인사 담당자들은 한결같이 “정말 모르겠다”고 하소연이다. 한 관계자는 “연말 임원 인사를 하려면 지금부터는 평가를 해야 하는데 (전략기획실에서) 말이 없다”고 말했다.

당장 경영에 미치는 악영향이 우려되고 있다. 한 사장급 인사는 “요즘 해외에서 크고 작은 입찰이 많다”면서 “장기화할 경우 경쟁사에 좋은 네거티브 선전의 빌미를 주게 돼 수주 차질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인도 출장에서 귀국 후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김 변호사 의혹 제기 이후) 밖에서 ‘삼성이 그동안 잘해 왔는데 경영이 위축되는 게 아니냐’며 걱정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