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홍윤표 기자]16살의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목 디스크 부상의 시련을 딛고 스모계의 샛별로 떠오른 김종근(20. 마쓰가네베야 소속)이 일시 귀국했다가 지난 11월 3일에 떠났다.
한 달 가까이 서울에서 머무는 동안 침치료를 병행하며 휴식을 취한 뒤 규슈대회(11월11일~25일)에 출전하기 위해 후쿠오카로 갔다. 김종근은 9월 도쿄대회 죠노구치급에서 7전전승으로 우승, 이번 대회에는 죠니단으로 한 등급 상승했다.
스모는 철저한 계급사회. ‘계급에 살고 계급에 죽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선수(力士=리키시라고 부른다)의 신분은 오로지 계급에 의해서 지배되고 대우도 받는다. 김종근은 “규슈대회에서 5승 이상만 거두면 산단메(밑에서 3번째 계급군)로 올라간다”며 스스로 전의를 북돋우었다.
스모이름이 긴류잔(金龍山)인 그는 동, 서 양군 합쳐 70명이 들어 있는 죠니단의 반즈케(계급표)에서 동군 28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성적이 좋을수록, 승수가 패수보다 많을수록 계급은 수직상승하는 것이 스모이다.
김종근은 유도선수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유도복을 입기 시작, 서울 성수중 3년 때까지 유도 헤비급선수로 뛰었다. 하지만 전국체전에서 어이없는 편파판정을 당한 것을 빌미로 유도를 포기했다. 그는 “그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은 것은 아니지만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유도로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이 꿈이었던 김종근은 역시 유도선수 출신으로 스모에서 마쿠시타(幕下. 위에서 3번째 계급군)까지 올랐던 김기주 씨의 소개로 낯선 스모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그러나 2002년 12월, 입문하자마자 목을 다는 바람에 3년간 제대로 운동을 하지 못했고 침치료로 기적처럼 부상을 떨쳐버리고 지난 9월에야 첫 우승의 개가를 올렸다. 비록 하위 계급이긴 했으나 비로소 스모계에서 도약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한 것이다.
그는 키 188㎝, 몸무게 150㎏의 거구이다. 11월 2일 올림픽 파크텔에서 김종근을 만나 두 시간 가량 그의 스모 생활과 꿈을 들어봤다.
-유도를 한 것이 스모에 도움이 되는가.
▲전혀 소용이 없다. 움직임이나 근육 쓰는 것이 스모와 유도는 정반대이다. 힘 쓰는 것이나 넘기는 방향이 다르다. 유도는 상대 중심을 밑으로 끌어내려야 하지만 스모는 상대 중심을 밀면서 위로 넘어뜨려야 한다.
-스모선수들은 몸집을 불려야 유리한 것인가. 챵코나베(스모선수들의 주식)는 얼마나 먹는가.
▲스모는 체중을 불려야하는 직업이다. 챵코나베는 매일 그 내용물이 다르다. 고기나 생선, 야채가 고루 들어간다. 한끼에 보통 3~4공기를 먹는다. 하루에 두 번 식사를 한다. 아침 10~11시에 한 번, 저녁 6시에 한 번 그렇다. 새벽 4시반께 일어나 5시간 정도 훈련하고 식사를 하게 되는데 식사는 순서가 있다. 오야가타(도장의 관장)가 제일 먼저이고, 그 다음 쥬료(十兩) 이상 선수에게 우선권이 있다. 그 후 선배 순으로 먹는다. 식사와 청소도 밑에 계급선수들이 당번을 정해 돌아가며 하게 된다. 다 치우고 나면 오후 4시가 된다. 100~110㎏의 가벼운(?) 선수들은 5, 6그릇을 억지로 먹어야하고 잠자기 전에도 먹는다.
-수입은 어떤가.
▲기본적으로 스모선수의 수입은 일본스모협회가 보장해 준다. 도장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는 데 지장은 없다. 마쿠시타까지는 격월로 열리는 대회 후, 즉 두 달에 한 번 월급을 받는다. 그러나 쥬료(스모에서 출세한다고 하는 계급군) 이상 오르지 않으면 어렵다. 쥬료에 오르면 시중드는 선수가 2~3명 되고 후원회 지원금과 월급, 현상금을 받게 된다. 스모 선수의 1차 목표는 쥬료에 드는 것이다.
-현재 한국인 선수로 마쿠우치(1군격인 최상위 계급군)에 김성택이 들어 있다. 그 선배와 자주 만나고 조언을 듣는가.
▲성택이 형과는 대회 때 가끔 만나 식사도 하고 격려의 얘기도 듣는다.
- 도장 생활은 어떻게 하는가.
▲우리 도장은 지바에 있다. 3층 건물인데 1층에 훈현장(도효라고 부름)과 식당이 있고 2층은 오야가타의 생활 공간, 3층이 숙소이다. 3층에서 큰 방에 선수 14여명이 집단기거를 한다. 어려서부터 단체 생활을 하다보니 불편함이나 어려움은 모르겠다. 두 달에 한 번 대회를 마친 뒤 일주일간 휴가가 있고 도장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1년에 한 번 집에 갈 수 있다.
- 요코즈나(씨름 천하장사격) 두 명이 모두 몽골 출신이고 몽골 선수들이 스모에서 판을 치고 있다.
▲몽골선수들은 체력을 타고 났다. 어렸을 때부터 고지대에서 말타고 부흐(몽골 씨름)를 하면서 자라나서인지 다리와 허리힘이 좋다. 일본에 선수를 보낼 때도 나라에서 뽑아서 보낸다고 한다.
- 스모는 계급사회이자 일본 정신의 상징이다. 어떤 차별이 있는가.
▲마쿠시타 이하는 2군, 쥬료 이상은 1군으로 보면 된다. 우선 2군격인 마쿠시타 이하의 계급 선수들은 팬들에게 손도장(사인같은 것)을 찍어줄 수 없다. 색깔 있는 신은 마쿠우치 이상 돼야 신을 수 있고 '셋다(밑바닥에 가죽을 대고 뒤꿈치에 쇠붙이를 박은 신)'는 산단메(三段目)부터 가능하다. 무늬가 들어간 허리띠나 기모노 위에 코트를 입는 것도 마쿠시타(산단메 위 계급)가 돼야 허용되는 등 계급에 따른 자질구레한 규제가 많다.
-가장 어려운 일은 무엇인가.
▲올라갈수록 어렵다. 목표와 꿈은 항상 있지만 다치고 나서 '열심히 하는 것'과 '자신을 재촉해서 서두르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상이 너무 심해 고통을 받았지만 이제는 하루하루 충실하자고 스스로 다짐한다. 그 틀 안에서 목표를 정해 마음이 편하다. 스모는 밖에서 보면 단순한 운동같지만 하는 사람 처지에서는 제일 어렵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을 건다.
-왜 스모를 하는가.
▲목표나 꿈은 항상 있다. 하고 싶어서 하는 운동이다. 유도는 익히기를 한 다음 자유연습을 하는 식이지만 스모는 기술이 몸에 배도록 해야한다. 한 번 몸에 배면은 자연스럽게 기술이 우러난다. 그래서 어렵다. 기술습득만 반복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한 동작이 아주 몸에 배야 한다. 어떤 운동세계도 스모 같은 곳은 없다. 어떻게 보면 극히 아마추어적이고, 어떻게 보면 진짜 프로다. 양쪽다 경험할 수 있다.
약관의 젊은 나이지만 김종근은 의젓하다. 자신의 세계관이 뚜렷한 젊은이다. 김종근이 이렇게 말했다. "목표를 100%(쥬료 이상 올라가는 것) 이루면 좋겠지만 앞으로 길게 내다본다면 정말 많은 경험을 쌓는 것 자체가 좋다"고. "집에서는 아무것도 하기싫었지만 밥도 짓고 청소도 하면서 운동해야할 내 일이 그 쪽에는 있다"며 자리를 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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