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날씨자문위원 허창회 교수

한파나 혹서 같은 이상기후가 발생할 경우 엘니뇨와 라니냐 현상이 그 원인으로 지목되곤 한다. 엘니뇨는 적도 부근의 동(東)·중(中)태평양 바닷물의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는 현상을, 라니냐는 그 반대를 일컫는다. 엘니뇨와 라니냐에 의해 세계의 대기와 해양의 순환이 달라지고, 이상기상 현상도 발생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엘니뇨와 라니냐가 우리나라 기후에 영향을 끼친다는 과학적 증거는 아직 없다. 그럼에도 불구, 기상이변의 원인을 설명하거나 몇 개월 뒤의 장기예보를 내놓을 때 우리나라에선 이 엘니뇨와 라니냐가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최근 발표된 기상청의 장기예보도 “라니냐로 인해 올 겨울 기온이 낮아질 것”이란 내용이었다.

정말 그럴까? 지구본을 돌리면서 우리나라가 열대의 중앙과 동태평양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보라. 이렇게 먼 곳으로부터 오는 신호라면 우리나라에 오기 전에 그 성질이나 강도가 많이 변할 가능성이 높다. 설령 엘니뇨와 라니냐가 우리나라에 영향을 끼친다고 해도, 그것은 직접적이 아니라 북태평양 고기압이나 시베리아 고기압을 변화시키는 간접적 방식일 것이다. 게다가 이런 고기압 세력을 변동시키는 요인으로는 아시아 대륙의 지면 수분 상태와 북대서양이나 극지(極地) 주변의 대기순환 같은 복잡한 요인이 뒤섞여 있다. 기상청이 장기예보를 할 때 불확실한 예측 인자(因子)를 주요 요인으로 삼는 현재의 시스템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