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전략기획실(전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49) 변호사가 언론인터뷰와 양심선언 등을 통해 밝힌 삼성그룹 비자금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삼성은 “전혀 사실무근이며 음해”라고 강력히 반박하면서도 김 변호사의 추가 폭로에 대해 바짝 긴장하고 있다. 김 변호사의 제기한 의혹들이 하나 같이 메가톤급 이어서 의혹중 단 하나라도 사실로 드러날 경우 상당한 파장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김 변호사가 제기한 의혹의 내용을 살펴보면 ▲삼성의 불법 비자금 조성의혹 ▲ 2002년 대선자금 비자금 의혹 ▲에버랜드 재판부 로비 및 증인조작 의혹 ▲'떡값'검사리스트 ▲이건희 회장의 직접 지시 로비관련 문건 ▲ 김 변호사에 대한 거액 회유시도 등이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5일 2차 기자회견을 통해 불법 비자금 조성 경위 및 삼성그룹 로비 내부 문건 등을 공개키로 했다. 이 자리에는 김 변호사가 직접 참석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사제단 김인국 신부는 "비자금 등 삼성 자체의 비리 의혹이 이번 사건의 핵심"이라며 "검찰에 이 사건을 맡기기 보다는 특검을 통해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연 삼성그룹은 불법 비자금을 조성했나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지난달 29일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성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 변호사가 ‘나도 모르게 내 명의로 개설된 은행 계좌에 50억원대 현금과 주식이 들어 있었으며, 이는 삼성이 불법으로 조성한 비자금’이라고 양심선언을 했다”고 밝힌 뒤 삼성의 불법 비자금의혹에 대한 수사를 촉구했다.
사제단은 김 변호사가 물증으로 제시한 삼성 비자금 의혹 계좌는 은행계좌 3개와 증권계좌 1개를 그날 공개했다.
특히 삼성 본관 2층에 있는 위치한 우리은행 삼성센터지점에 개설된 미확인 계좌를 보면 김변호사의 2006년 금융소득 종합과세 납부실적에는 1억8000여 만원의 이자소득이 발생한 것으로 나와 있다. 연이율을 4.5%로 해서 계산하면 이 계좌의 예금액이 50억원으로 추정된다고 사제단은 밝혔다.
이 계좌는 김 변호사 자신도 모르게 개설된 자신 명의의 보안계좌지만 정작 본인은 계좌 조회조차 할 수 없는 ‘의문의 계좌’여서 은행측과 공모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시사주간지‘시사인’과 인터뷰에서 “삼성그룹내 실세 중의 실세인 전략기획실 산하 전략지원팀이 계열사 사장단 및 재무담당 임원,전략기획실 임직원 명의의 차명계좌를 이용, 비자금을 조성해 운용하고 있다”며 “분식회계를 통해 연간 1조원가량 비자금을 만들었다. 계열사마다 비자금 액수가 할당되면 무조건 돈을 만들어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비자금이 ‘떡값’이라는 이름으로 정치인, 판검사, 정부 고위 관리, 언론인 등 사회 지도층 전반에 뿌려지고 있으며 형태도 현금, 골프 접대, 상품권, 호텔 할인권, 고급 포도주 등 다양하다고 김 변호사는 주장했다.
사제단은 이건희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전무의 재산형성과정 및 비자금 조성 경위와 내역에 대한 추가폭로를 준비중이다.
◆2002년 대선자금은 비자금의 일부인가?
김 변호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삼성이 정치권에 제공한 선거자금의 일부는 회사 비자금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검찰은 대선 자금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삼성이 2002년 대선을 앞두고 800억원 가량의 무기명채권을 구입했으며, 이 중 300억원어치는 이회창 후보 캠프에, 15억원어치는 노무현 후보 캠프에, 15억4000만원어치는 김종필 당시 자민련 총재에게 각각 전달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은 “정치권에 건넨 선거자금은 모두 이건희 회장의 개인 돈”이라는 삼성 쪽의 진술을 받아들여 돈의 출처는 조사하지 않았다.
김 변호사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당시 불법 대선자금의 출처에 대한 검찰 수사가 잘못된 것이며, 결국 재수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떡값’ 검사 리스트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그룹이 떡값 제공 등을 통해서 주요 검사 등을 관리해왔다고 주장한 것도 의혹의 핵심 포인트이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김인국 신부는 “김 변호사가 법무팀장 시절 법조인들을 상대로 직접 로비한 명단을 작성해 사제단에 건넸다”고 말했다.
이 명단에는 검사장급을 포함한 검찰간부 40여명이 포함됐으며, 현직 고법판사와 대법관 등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변호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삼성이 구조본 차원에서 부장검사급 이상 검찰 간부 40여명에게 추석이나 설 ‘떡값’과 휴가비 명목으로 정기적으로 돈을 건넸다”며 “대략 한 번에 500만원씩 건넸는데, 검사장급은 1천만원 이상 건네기도 했다.삼성 구조본이 검찰을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은 연간 10억원 정도에 이른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돈 전달에는 검찰 간부들과 학연·지연 등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인연으로 얽힌 삼성 임원들이 주로 동원된다”며 “처음에는 자기 돈을 주는 것처럼 하다가, 나중에 익숙해지면 ‘사실은 회장님이 주신 돈’이라고 밝힌다”고 말했다.
사제단측은 추후 ‘떡값 검사’명단을 공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중이다.
◆ “에버랜드 재판장에 30억 주라” 지시
김 신부는 언론 인터뷰에서 “에버랜드 재판에서 재판장에게 30억원을 주라는 지시가 내려왔는데 김 변호사가 하지 않았다”며 “그 이후로 김 변호사가 내부에서 따돌림을 당하다시피 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김 변호사가 했던 재판조작이라는 것이 에버랜드 사건의 실질적 책임자는 이학수(부회장)인데 허태학(전 에버랜드사장)이 대신 뒤집어 썼다는 내용”이라며 “이때 누구는 어떻게, 누구는 어떻게 식으로 증인의 진술 내용까지 일일이 김변호사가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 직접 지시한 ‘로비문건’
사제단은 5일 이건희 회장의 로비 관련 지시사항이 담겼다는 삼성 그룹의 내부문건을 시민단체 등을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이 문건의 내용은 삼성의 최고위층이 참석한 회의에서도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김 신부는 “이 문건내용은 ‘로비의 기술’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 ‘지검이나 지방검찰 쪽은 계열사 사장이 맡고 중앙지검쪽은 그룹차원에서 맡는다’ ‘돈 안받으면 비싼 포도주 줘라. 돈 안받는 추미애 의원 같은 사람은 이렇게 하라’고 써 있다.(추의원 직접 거론) 이밖에 ‘시민단체도 관리하라’ ‘검사 한명당 500만~1000만원, 검사장급은 1000만원가량’ ‘법무부 장관, 차관도 로비의 대상이 된다’(이름은 없고, 급으로 나와 있다)고 써 있다”고 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 김 변호사 거액 회유시도
김 신부는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김변호사가 사제단을 찾기 전까지 삼성측이 지속적으로 찾아오거나 연락해 ‘(폭로하지 않으면) 얼마를 주겠다’는 식으로 회유했다고 했다”고 전했다.
김 신부는 “김 변호사는 이같은 내용이 담긴 삼성측의 문자메시지도 보관해 사제단에 전달했다”며 “이 문자메시지를 보고서야 김변호사가 돈 때문에 삼성비자금 건을 터뜨리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 신부는 또 “김변호사의 부인 집 앞까지 삼성의 고위인사가 직접 찾아와 초인종을 눌러가며 새벽 1시까지 기다리곤 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삼성 “왜 음해하나” 전면 부인
삼성그룹측은 김 변호사가 사제단과 언론인터뷰를 통해 제기한 모든 의혹을 전면 부인하면서 폭로 배경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삼성관계자는 “김 변호사가 삼성에 7년 동안 근무하면서 연봉, 성과급, 스톡옵션 등으로 102억원을 받았고, 퇴직한 뒤에는 올해 9월까지 3년 동안 퇴직 임원 예우 차원에서 고문료 명목으로 매달 2200만원씩 지급 받는 등 적지 않은 예우를 받았다”며 “퇴사 후 전 직장을 음해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삼성측은 비자금 의혹에 대해 “재무팀 임원이 1998년 지인(知人)의 부탁을 받고 삼성전자 주식을 운용해 돈을 불리는 과정에서 합의하에 대학 동문인 김 변호사의 계좌를 이용했다”며 “처음 7억원이던 돈이 주가가 오르면서 50억원대로 불어났는데 실제 주인이 최근 돈을 다 빼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결국 삼성 그룹과는 전혀 무관한 개인간의 거래를 김 변호사가 비자금이라고 왜곡했다는 주장이다.
떡값 검사의혹에 대해서도 “삼성에서 김변호사에게 법조계에 로비를 하라고 지시한 적이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삼성그룹과 검찰은 “(김변호사가) 냄새만 피우지 말고 낱낱이 명단을 공개하면 될 것 아니냐”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삼성 관계자는 로비문건에 대해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에 근거한 것일 뿐 실체를 알 수 없는 문건이다. 그런 게 있다면 공개하라”며 “이 회장이 그런 지시를 시시콜콜히 할 만큼 한가한 사람이냐”고 반박했다.
그는 또 “삼성에서 ‘얼마 주겠냐’는 식의 회유를 했던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보관하고 있다고 하는데, 상식적으로 그런 얘기를 문자 메시지로 전달한다는 게 말도 안 된다”며 “또 문자 메시지를 보낼 때 발신자 전화번호를 다른 사람 전화번호로 바꿔서 전송할 수도 있다. 조작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해명했다.
▲천주교정의구현 사제단은 어떤 단체
천주교정의구현 사제단은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행동하는 신앙인의 양심을 내세워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앞장서온 단체다.
사제단은 1974년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가 유신정권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구속된 것을 계기로 결성됐다.
이후 유신반대 투쟁에 앞장섰던 사제단은 특히 1987년 5월에는 “서울대생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은 조작됐다”는 성명서를 내 6월 항쟁에 결정적인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1989년에는 사제단 문규현 신부가 당시 대학생이던 임수경씨와 함께 평양 ‘세계 청년학생 축전’에 참가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