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국내 미술계에 논란을 불러온 이중섭·박수근 화백의 작품 위작(僞作)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는 23일 위작판정 작품 소장자인 한국고서연구회 고문 김용수씨에 대해 사기 등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본지 10월24일 보도


◆위조수법의 백태

위작을 만드는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의 수법을 사용한다. 최고 수준에 도달한 사람은 사실상 진품과 구분이 어려울 정도이며, 실제로 감정가들조차 찬반이 치열하게 엇갈려 결국 감정불능에까지 이르는 사례도 있었다.

영국의 톰 키팅이라는 위조범은 2000여 점의 위작을 만들어 이름 있는 뮤지엄과 경매회사까지 홀딱 속아넘어가게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모든 테크닉과 기술을 구사할 수 있었다. 그가 가지지 못한 단 한 가지는 자신의 고유양식을 가지지 못했던 것이다." 키팅의 친구인 존 브랜들러의 말이다.

한국에서 탄생한 위작들 역시 감쪽같은 작품들이 적지 않았다. 천경자, 김기창, 이상범 등의 위작들은 작가의 섬세한 특징과 필법, 서명과 액자까지 거의 완벽한 복제였다.

위작유형의 구분은 직접모방이 가장 대표적이다. 이는 일정한 모델을 두고 복사를 하는 방법으로 일반적이고 쉬운 수법이다. 최근에는 영상기법이 발달하여 묘사기법이 더욱 발전하고 있다.

창작적 위작은 고수의 수법이다. 이 단계는 위조범 자신이 바로 그 작품의 작가가 되어 새로운 창작의 경지를 넘나드는 것으로서 감정 전문가들도 감쪽같이 속아 넘어갈 수 있다. 기법뿐만 아니라 작가가 사용했던 재료, 액자, 종이 등을 찾아내어 위조하는 경우도 많다.

세계적으로도 미술품 위조범들은 혀를 내두를 정도의 대담함과 정교함을 구사한다. 영국의 존 드류가 가난한 화가 존 미야트를 고용하여 위조한 작품들은 크리스티 경매회사에서 판매되는 것은 물론, 빅토리아 알버트 뮤지엄과 테이트 갤러리 등에 소장되기까지 했다. 심지어는 소장 카드까지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대담함을 보였으며, 약 45억원 가량의 돈을 번 것으로 추정된다. 로마에서 거주한 에릭 헵번은 무려 5000여 점의 위작을 만들었으며, 많은 뮤지엄으로 퍼져갔다.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대부터 이와 같은 미술품 위조범들이 활약해왔으나 대다수는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중에서는 K모씨처럼 특정한 작가 한 두 사람만을 표적으로 거의 수십 년을 제작해, 자신의 전공과 그 나름의 화풍을 형성하는 예도 있다.

▲ 지난 4월 서울 서초경찰서가 이중섭·천경자 등 국내 유명화가 작품 위조 사건에 관련해 압수한 작품들.

◆감정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미술품 진위감정은 크게 ▲안목감정 ▲자료감정 ▲과학감정으로 나뉜다.

안목감정은 작품을 보는 풍부한 지식과 경륜을 바탕으로 특징이나 재료, 화법, 서명 등을 면밀히 관찰한 다음 판정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90%는 이 과정에서 걸러진다. 이중섭의 그림 ‘떠받으려는 소’의 위작을 보면 선의 힘이 약하고 전체적으로 생동감이 없다.

종이의 퇴색 정도로도 알 수 있다. 옛 종이라도 최근에 잘라 그림을 그리면 바깥쪽 부분만 퇴색이 심한 상태로 남아있게 되지만, 오래된 그림이라면 고르게 퇴색된다.

안목감정은 대부분 자료감정과 함께 실시된다. 자료는 작품의 소장경로, 경매사 등의 판매기록, 표구나 액자 제작처의 증언 등을 바탕으로 한다.

자료감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가들의 ‘작품 족보’라고 말할 수 있는 ‘카탈로그 레조네(Catalogue Raisonne)’를 꼽는다. 이 자료집에는 작가의 모든 작품을 수록되며, 각 작품의 철저한 기록, 소장처, 사진, 전시회 기록 등도 들어가있다. 또한 전문가나 유족 등이 일일이 검증한 자료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일단 이 자료집만 대조해보아도 어느 정도의 윤곽이 잡힐 정도이다.

다음으로는 과학감정이다. 여러 형태의 과학기자재를 동원한 단층분석, 방사선 사진, 적외선 촬영 등을 해 감정한다.

최근 이중섭과 박수근 화백 위작 사건에서는 작가들이 활동하던 시기에 쓰이지 않던 물감이 발견됐다. 금속 느낌을 내는 물감은 작가들이 숨진 이후인 1960년대 말에 나왔고, 국내에는 90년대 이후에 유통됐던 것이다. 감정단은 서명을 베껴 눌러쓴 뒤 다시 붓으로 위조한 가짜 서명과 당시에 사용되지 않던 종이도 찾아냈다.

진품 확인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전문 감정사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프랑스의 경우 수천 명이 넘는 전문가들과 30개의 감정사단체가 있으며, 한 분야를 평생 동안 전공한 개인 감정사들이 미술가들의 재단, 위원회와 함께 감정에 임하고 있다. 이들은 사법, 세관감정사 등의 명칭이 부여되어 공공적인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감정의 실수를 대비하여 감정사들은 단체로 보험에 가입해두어 손해에 대한 책임을 감수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한 분야를 평생 동안 전공한 전문가도 극소수인데다 시스템도 열악하다. 한국고미술협회,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 등을 제외하곤 감정기구가 없으며, 개인이 감정서를 발행하는 경우는 아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