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배씨 좀 부탁합니다!

회사 홈페이지를 구성하면서 ‘상담실장 김덕뱁니다’라는 코너를 꾸몄다. 한 개그 프로그램의 코너에서 자주 나오는 유머로 어떤 질문에도 “김덕뱁니다”만 외치는 개그를 보고 제목을 이렇게 단 것이다. 그랬더니 “김덕배씨 좀 부탁합니다”라는 문의전화가 종종 온다. 처음엔 이게 유머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갔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프로그램을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김덕배씨가 상담실장이라고 여길 만 했다.

그러고 보니 또 하나 생각나는 일이 있다. 외국인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후배가 있는데, 한 외국인이 “계세요”라는 말의 정확한 뜻이 무어냐고 질문을 하더란다. “‘be’ 즉 ‘있다’라는 말의 높임말이다”라고 했더니 또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기가 학과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학생 하나가 “계세요?”하면서 들어오더란다. 저 말이 ‘hello’라는 뜻도 있구나 하고 이해했는데, 그 학생이 나갈 때 “그럼 계세요”하면서 나가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이 외국인은 혼란에 빠졌다고 한다.

작을수록 큰 시야를

이러한 혼란이 종종 발생한다. 주어진 글을 읽고 거기에서 말한 정보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유형의 문제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기 때문이다. 각종 사고력, 적성, 적격성 시험들은 물론이거니와 수능시험, 특목고 입시 문제, 영어 문제들도 이런 것들이 많다. 이른바 ‘내용 일치’ ‘사실 일치’ 문제라고 일컬어지는 것들이 그것이다.

도대체 주어진 글에서 말한 것들이 보기에서 읽은 바로 그 말과 같은 뜻인가 다른 뜻인가가 헷갈리는 것이다. 어느 시험에서도 제시문과 똑같이 써서 보기를 구성하는 시험은 없다. 기본적으로 주어의 변환, 서술어의 변환, 태의 변환, 유사 어휘의 사용 등을 시도하여 다른 말로 보이게 보기를 구성한다. “한나는 한이의 언니다”라는 말은 곧 “한이는 한나의 여동생이다”라는 말로 변환된다. 그냥 ‘동생’이라고 하지 않고 ‘여동생’이라고 하는 것은 ‘언니’라는 말의 정확한 뜻을 물어보기 위함이다.

그래서 이런 문제들을 풀기 위해 어휘들을 익히려고 노력한다. 특히 영어 같은 경우에는 어휘를 익히기 위해 단어장을 만들어 달달 외우는 학습방법을 채택하곤 한다. 하지만 사실 앞서의 외국인은 “계세요”라는 말의 뜻을 몰라서 당황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용된 맥락에 따라 조금씩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재차 한국어 선생님을 찾아야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유형의 문제에서는 전체 글의 맥락에서 주어진 글의 해석을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다. 단어의 뜻에 집착하다 보면 오히려 엉뚱한 해석을 이끌어 낼 수도 있다. 그러니 내용 일치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는 세밀하게 보려고 고민하기 보다는 오히려 더 크게 보아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려고 애쓰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말이 적당하다 할까? 어쨌거나 김덕배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로 홈페이지 코너의 제목을 바꾸거나, 그 개그 프로그램이 더 크게 뜨거나 둘 중의 하나를 양단간 선택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