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한승·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드라마 혹은 영화에서 미술 관련 이야기가 나올 때 ‘화가’란 말이 종종 등장한다. 예를 들어 “나의 꿈은 화가이다”, “훌륭한 화가의 전시회” 식이다. 물론 이 상황에서 화가라는 표현이 틀린 것은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요즘 미술계에서 화가라는 명칭이 잘 쓰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화가란 말은 왠지 어색하고 애매한 느낌을 준다.

그럼 어떤 단어를 사용하는가? 그것은 ‘작가’이다. 보통 작가라고 하면 우선적으로 글 쓰는 사람을 떠올리지만, 사전적 의미는 문학, 사진, 그림 등의 예술품을 창작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더불어 미술계에서는 ‘그림을 그린다’보다는 ‘작업을 한다’라고 말하며, ‘화실’보다는 ‘작업실’이라 하며, ‘작품’보다는 ‘작업’이라 말한다.

과거에는 서양화과를 졸업하면 서양화가, 동양화과를 졸업하면 동양화가로 불렸다. 대체로 장르와 매체의 구별이 확연했으며, 예술가들의 창작행위도 그러한 구분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젊은 작가들은 좀 다르다. 그들은 서양화과를 나왔다고, 무조건 서양화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추구하는 내용과 개념에 따라 가장 적절한 장르와 매체를 선택한다. 즉 주제에 맞춰 조각을 할 수도 있고, 비디오 아트를 할 수도 있다. 자연스럽게 여러 장르를 횡단하는 작업이 나타나고, 장르의 구분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구체적이고 고정된 의미를 지닌 단어들을 대신하여 포괄적이고 유연한 의미를 지닌 단어들이 입에 더 자주 오르내리는 것 같다. 단어 사용의 미묘한 변화에서 예술은 끊임없이 변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