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으로 탈출한 북한 최고권력자 김정일의 본처 성혜림씨가 배우로 활동할 당시의 모습.

김정일의 첫 번째 부인 성혜림씨의 경남 창녕 생가가 복원중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월간조선 11월호가 보도했다.

성혜림씨는 창녕 성씨로, 창녕 만석꾼의 딸로 태어나 1950년 북한으로 넘어가기 전 어린 시절을 창녕 인근에서 보낸 바 있다. 그 때 살던 성혜림씨의 생가가 복원되고 있다는 뜻이다.

성혜림씨는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37)의 생모로, 1996년 2월 언니 성혜랑(72)과 함께 북한 탈출을 시도해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성혜랑씨 일가는 망명에 성공했지만 성혜림씨 망명은 미수에 그쳤고, 이후 지병으로 고생하다 2002년 5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사망했다.

월간조선 취재기자는 최근 창녕 성씨들의 친목 모임인 ‘청맥회’를 이끌고 있는 성동경 회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그는 “성혜림씨 집안은 이 일대 최고 부잣집으로, 아버지대에는 1만3000꾼이었다”며 “지금은 전쟁 중에 대부분 집에 소실되어 없어졌지만, 성혜림씨 집안 고택은 과거 100칸이 넘었다”고 했다. 그는 “몇 채 남지 않았다가 최근 복원 공사를 시작했다”며 “2004년 성혜림씨 집 일부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 자리에 함께한 성낙희(69)씨는 “창녕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양파를 재배한 곳”이라며 “일본에서 양파를 들여와서 재배한 사람이 성재경씨인데, 성혜림씨와 5촌 사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현재 성 부잣집을 복원하고 있는 사람은 성재경의 아들 성기학씨”라며 “그는 ‘노스페이스’인가 하는 등산복을 만드는 영원무역 회장으로, 현재 성 부잣집 전체를 인수해서 대규모로 복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성기학 회장은 왜 자신이 복원하고 있는 옛집 가운데 성혜림씨의 생가가 포함되어 있다는 애기를 공개적으로 하지 않는 것일까.

이에 대해 성낙희씨 일행은 “냉전 논리가 지배하던 시절에 이 지역 사람들은 성혜림씨가 이곳에서 자랐다는 것을 알리기 싫어했다”며 “그 때문에 창녕만 벗어나면 ‘성 부잣집에 성혜림씨 생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그는 “그러다가 1990년대 김일성이 사망한 후 본격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며 “그러나 성기학 회장은 사업하는 양반이라 성혜림씨 이야기만 나오면 질색했었다”고 말했다.

[※ 더 자세한 내용은 월간조선 11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