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밤 강원도 화천 산양초등학교 운동장. 육군 7사단 장병을 위한 위문공연에 나선 ‘위문열차’ 공연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시골 학교의 작은 공연장은 1000여명의 군 장병과 마을 주민들로 가득 찼다. 무대에 오른 국방부 근무지원단 홍보지원단 소속 김범수(28) 상병이 자신의 히트곡 ‘보고 싶다’ 등을 부르자 운동장은 콘서트 현장으로 변했다. 김 상병은 “자정쯤 잠자리에 들면 내일 아침 곧바로 서울로 돌아가 라디오 생방송에 출연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 경기도 오산에서 충남 계룡대로 향하는 고속도로. 공군 군악대 소속 신중관(24) 병장은 차창에 기대 저녁때 있었던 자신의 마술 공연을 곱씹고 있었다. 신 병장은 공군 작전사령부 행사에서 자신만의 현란한 마술로 장병 250여명의 혼을 빼놓고 오는 길이었다. 신 병장은 “실크에서 비둘기를 만들어내는 장면에서 왼손을 더 들어올렸으면 더 큰 호응을 이끌어 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 속이는 게 쉽지 않다”면서 “군 특성상 밤을 새우지는 못하지만 자정무렵까지 연습하는 날이 일주일에 3~4번은 된다”고 말했다.
요즘 신세대 군대의 키워드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다양화’를 들 수 있다. 입대하기 전 사회에서 가졌던 직업과 경력, 기술, 경험 등을 군대에서도 그대로 살려 나가는 신세대 군인들이 많아졌다. 군도 제도적 뒷받침으로 호응하고 있다. 사회의 직업이나 전공, 특기, 취미 등이 군에서는 특기로 사용할 수 있도록 특기병의 선발 폭을 넓혀주고 있다. 육군의 경우 유해발굴·기록병, 군마조교병, 사이버수사전문병, 체육학 조교병, 복지병 등 21개 군사특기임무병을 개별적으로 모집한다.
공군은 지난 4월 초 세계 최초로 창단한 e-스포츠팀 ‘에이스(ACE·Airforce Challenge E-sports)’가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중심으로 100만명의 팬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스타크래프트 ‘테란의 황제’ 임요환(27) 상병을 포함, 모두 10여명의 프로게이머로 구성된 에이스팀 병사 전원은 공군 중앙전산소 소속의 전산병들. 공군 관계자는 “에이스팀 활약은 공군 장병들 사기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되고, 공군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도 더할 나위 없다”고 했다. 에이스팀 병사들은 ‘워게임’ 평가자로서의 임무도 수행하고 있어, 군 전투력 향상에도 기여를 하게 될 전망이다.
최근 각 군에 등장한 마술병도 옛 군인들에겐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한국 사회에 선풍적인 마술 붐을 일으킨 이은결(23) 이병은 지난 6월 해군에 입대, 홍보단에서 복무하고 있다. 지난 2005년 세계 마술대회를 제패한 그의 마술은 보는 이의 혼을 빼놓을 정도로 현란하면서도 정교해 군 장병 등 관객들의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다. 그는 지난 2002년 서해교전 때 NLL(북방한계선)을 지키다 북한 경비정의 기습 공격을 받아 사망한 6명의 장병들을 추모하는 마술을 연습하고 있다고 한다.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이루마(29) 상병도 해군이 아끼는 ‘보물병사’ 중 한 명. 작년 6월 입대, 군악병 특기를 갖고 있다. 이루마 상병은 이날 밤에도 “내일(18일) 계룡시에 있는 한 중학교 행사 때 연주할 곡을 연습한다”며 밤 늦게까지 ‘키스 더 레인’과 ‘메이비’ 등의 곡을 치고 있었다.
유명인사 출신뿐 아니다. 대학의 전공이나 특기 등을 살려 군 전투력 향상과 자기 계발을 꾀하는 병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해군 정책홍보실에 파견근무하고 있는 금동훈(22) 상병은 일명 사물놀이병이다. 공식적 군사특기상으로는 연예병이지만 한국예술종합학교 연희학과 4학년 휴학, 김덕수 사물놀이패 멤버라는 경력을 바탕으로 그는 사물놀이를 통해 군 복무를 하고 있다.
홍익대 시각디자인과를 다녔던 배수열(23) 일병은 만화병이다. 그는 두 달에 한번씩 제작되는 해군의 공식 잡지 ‘해군’에 2쪽짜리 16컷 만화를 게재한다. 영화감독이 꿈인 박찬연(24) 병장은 해군홍보 UCC 제작을 책임지고 있다. 직접 촬영도 하고 편집을 해, 인터넷에 올리는 일을 하고 있다.
연예인 출신들이 특기병으로 근무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국방부 근무지원단 홍보지원대 병사 17명 중에는 연예인 출신이 8명이다. 그룹 H.O.T 출신으로 다음달 말 전역하는 문희준(29) 병장과 개그맨 이진환(28) 병장·남창희 상병, 가수 김범수 상병, 그룹 ‘클릭B’ 출신의 김태형(27) 일병 등이 있다. 이들은 군 복무 초기에는 운전병과 소총수로 복무하다 연예병으로 주특기가 바뀌었다. 김범수 상병은 “연예인 병사라고 해서 군인의 기본이 없는 건 아니다”라며 “혹한기 훈련과 사격, 유격 등 국방부 소속 현역 병사들이 받는 훈련을 똑같이 받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