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운동연합은 1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펭귄, 고래 등 남극생물의 모형을 쓴 사람들이 크릴을 사용하는 한국 낚시꾼에게 ‘크릴을 사용하지 말고, 남극을 보호해달라’고 호소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크릴을 미끼로 사용하는 한국의 낚시인들은 남극의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는가.
지난 2일 환경운동연합은 '지구 온난화와 남극생태계의 위기'를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한국의 낚시인들이 남극의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는 주장을 폈다. 또 토론회 전날에는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펭귄 고래 등 남극생물의 모형을 쓰고 낚시꾼에게 크릴 사용 중단을 호소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한국이 남극에서 연간 4만t 정도를 잡아서 2004년과 2005년 어획량이 세계 1위였으며 이들 대부분이 낚시용 미끼로 쓰이고 있으니 꾼들이 자제해달라는 것이다.
크릴은 전 세계에 50여 종, 남극에 20여 종이 서식하고 있는 난바다곤쟁이과에 속하는 플랑크톤. 새우와 모양이 비슷해 '크릴새우'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으나 엄밀히 말하면 고등한 동물성 플랑크톤이다. 이끼류와 식물성 플랑크톤-크릴-오징어류로 이어지는 남극의 먹이사슬에서 크릴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총 자원량이 5억t에 이른다고 하지만 지구온난화의 위협을 생각한다면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표면적인 통계상 우리나라의 크릴 어획량은 3만� 내외(해양수산부 통계·환경운동연합의 발표와 다소 차이가 난다)에 이르지만 국내 실질 소비량은 그 절반인 1만5000� 정도. 크릴의 조업량은 24개국이 회원국인 남극조약기구가 제정한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협약(CCAMLR)의 틀 안에서 결정된다. 크릴 어업은 호주 태즈매니아 주도(州都) 호바트에 있는 협약 사무국으로 매년 조업량을 신청하고 허가 범위 안에서 이뤄진다.
업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크릴 어업은 계절적 특성상 주로 상반기에 이뤄진다) 한국의 조업량은 약 3만�. 이중 절반 정도는 일본과 유럽, 중국으로 수출하고 나머지 절반 정도가 내수용이다. 지난해 어획량 12만7천여� 중에서 한국의 어획량은 2만7000�으로 전체의 21%에 해당한다. 통계상 한국은 노르웨이(4만8000�)에 이어 두번째로 어획량이 많아 남극의 크릴 어업에 책임이 크다는 것이 환경연합의 주장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내용은 좀 다르다.
실질적인 크릴의 최대 어업국은 일본이다. 일본이 직접 잡는 양은 2만2천여�으로 나타나 있지만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선적의 배를 이용해 OEM방식으로 사들이고, 우리나라에서 수입해가는 물량(연간 1만5천� 내외)을 감안하면 최소 6만6000�에 이른다(2006년 기준). 일본은 이를 주로 물고기 양식과 향료생산, 낚시용으로 소비하고 연구용으로도 상당량을 쓰고 있다. 일본이 다른 나라 선적의 배를 용선하는 것은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피해나가려는 의도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크릴은 크릴오일로 통칭되는 건강보조식품의 생산과 유럽에서 활기를 띠고 있는 참치양식의 사료로 가장 많이 쓰인다. 당뇨와 고혈압치료제, 관절염치료제의 제조에도 필수 첨가물로 구분되고 있다. 크릴 오일은 오메가3로 불리는 영양소가 다량 함유돼 있어 최근 수년간 판매가 200% 이상 늘고 있으며, 참치류의 자원 급감으로 양식에 소모되는 크릴의 양도 급격하게 늘고 있다. 참치류의 최대 소비국이 일본인 점을 감안하면 남극 크릴의 최대 수혜국은 일본이라는 주장도 가능하다. 자연산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붉은 체색을 자랑하는 일본산 양식 참돔의 노하우는 바로 크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도 크릴은 대체식품으로 일찍부터 주목을 받아왔다. 껍질에 포함된 불소 성분의 부작용 때문에 주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어렵지만 15% 미만일 경우 문제가 없다고 알려져 있다. 크릴 조업에 직접 나서고 있는 인성실업과 동원산업도 이점에 주목해 교자만두, 떡국, 국수류 등 크릴 함량이 10% 내외인 제품을 개발해 판매에 나섰으나 아직 그 실적은 미미하다. 지난해에는 서울과 부산에 각각 전문음식점이 한 군데씩 문을 열었으나 수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미식가들에게는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지만 일반에는 아직 낯설었기 때문이다. 업계는 또 크릴로 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는 준비도 서둘고 있다. 그래서 국내에 들어온 크릴의 95%가 낚시용으로 쓰인다는 통계는 크릴의 제대로 된 사용처를 찾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일 뿐 낚시꾼을 죄인 취급하는 근거로는 적당하지 않다.
세계적으로 크릴을 낚시미끼로 사용하는 나라는 우리와 일본, 대만 정도. 다른 나라에서는 생선살이나 지렁이류, 쇠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인조미끼를 사용한다. 우리나라에는 70년대 중반 일본의 낚시문화가 전파돼 80년대 중반부터 크릴을 가공해 만든 전문 제품이 출시됐다. 크릴이 낚시미끼로 인기가 높은 것은 아미노산이 풍부하게 함유돼 있기 때문. 낚시뿐 아니라 부시리나 방어, 참돔 어업용 미끼로 폭넓게 쓰이고 있다. 크릴을 사용하기 전에는 청갯지렁이나 참갯지렁이, 연안 갯바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홍합 등이 주로 사용됐다. 최근에는 갯지렁이 역시 채집이 금지되고 있어 크릴마저 제외한다면 낚시는 고사하고 연안어업의 상당 분야가 타격을 받게 된다. 환경론자들의 주장대로라면 크릴과 남극생태계의 최종 소비자의 중간 연결고리인 오징어류의 어획과 소비 역시 중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