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리아 사진작가 올리비에로 토스카니

이탈리아 밀라노 시내에 우뚝 솟은 대형 간판에 일제히 시선이 꽂혔다. 뼈에 살가죽이 겨우 붙어있는 듯한 여인의 누드 사진이었다.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노리타'의 광고 사진으로 실제 거식증으로 15년간 고통을 겪었던 프랑스 여배우 이사벨 카로(26)가 모델이 됐다. 광고판엔 '거식증(拒食症)은 이제 그만'이라는 문구도 함께 새겨져 있었다. 일종의 충격요법 같은 이 사진에 대해 '패션계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를 높인 용기있는 행동'이라는 의견과 '거식증 환자도 상업화될 수 있다는 생각에 환자들을 더 악화시킬 것'이라는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맞섰다.

단 한 장의 패션 사진이 불러온 엄청난 논란. 십수 년전 그때를 묘하게 환기시켰다. '검은 옷의 사제와 흰 옷을 입은 수녀와의 키스', '탯줄이 그대로 달린 핏덩이 갓난아이', '죽어가는 에이즈 환자와 슬퍼하는 가족들'…. '베네통'이란 의류브랜드 광고 사진이지만, 관련 제품은 절대 등장하지 않았던 그 작품들.

거식증 모델 사진이나,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베네통 사진 등 정신적인 '충격과 공포'를 맛보게 해 줬던 그 작품들은 바로 이 사람, 이탈리아 출신 유명 사진작가 올리비에로 토스카니(Toscani·65)의 손을 거쳤다. "모든 사람이 오른쪽으로 가면 난 왼쪽으로 간다"고 말했던 그의 철학과 아집이 그대로 투영됐다.

# "모두 오른쪽으로 가면 난 왼쪽으로 간다" 

가장 고혹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마련인 패션 사진에 사회의식과 인간 본성이란 문제를 끄집어 내며 극과 극의 평가를 받았던 남자.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Corriere Della Sera)지 사진기자였던 아버지 밑에서 풍족하게 자랐던 그가 패션계에 이단아처럼 행동하게 된 건 왜일까. 토스카니는 왜 이런 사진을 찍을까.

프랑스의 유명 광고 사진작가 도미니크 앙기노(Anginot)는 "토스카니는 다른 별에서 온 사람"이라고 규정한다. 앙기노의 평가처럼 그의 성품과 스타일은 평균적인 사람들의 노선과 확연히 다르다. 그는 20대에 샤넬·발렌티노 등 유명 디자이너 작품들을 찍으며 일찌감치 유명세를 탔다. 세계적인 패션지 엘르나 보그 등의 대표 화보들을 찍어대면서 최고의 의상, 최고의 모델들 속에서 단순하고 화려하기만 한 아름다움을 재생산하는데 싫증을 느꼈기 때문이란 해석도 있다.

게다가 천재적인 상업주의자 루치아노 베네통(Benetton)의 든든한 후원을 받아 자신의 사회적 환타지를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었다는 설명도 있다. 1982년부터 2000년까지 18년간 베네통의 대표 광고 사진작가였던 토스카니가 있었기에 베네통이 세계적인 패션 그룹이 될 수 있었다는 평이 일반적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그의 철학과 행동을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아마 여자와 아름다움에 대한 그의 언급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그의 머릿속을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예전 한 인터뷰에서 “페미니즘에 실망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난 오랫동안 여성지에서 일했다. 보그나 바자같은 패션지를 보라. 여자들은 그런 멍청이 같은 잡지들에 나온 것들을 그대로 따라 하면 그들처럼 보일 거라 생각한다. 정말 바보 같은 짓이다.”

패션지 사진작가로 명성을 날렸던 과거를 살펴보면 언뜻 이해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인종’과 ‘인간성’을 환기시키는 사진들을 선보였음에도, 그를 초극단 남성우월주의자로 부르는 사람들이 상당수다.

이에 대한 그의 유명한 대답이 있다.“여자들은 대부분 멍청하다. 진짜 멍청해서가 아니라, 멍청이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교육해야 한다. 지금 사회는 ‘어머니’가 실종됐다. 요즘 여자들은 군대에도 가고, 전쟁에도 나서고 심지어 사람을 죽이기까지 한다. 과거 여성들은 그러지 않았다. 내가 여자들을 진정으로 존경했던 건 여자들이 집 밖으로 나가 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광고엔 수유하는 여성, 갓난 아이, 임산부 등이 자주 등장한다.

# "센세이셔널한 소재 상업적 이용" 비난 받아  

사회적인 스캔들을 일으킨 광고 사진들에 관한 그의 철학은 의외로 특이하지 않다는 게 의외다. 찍고 싶은 사진들을 찍을 뿐이라는 게 그의 철학이다. 그렇다고 그냥 '생각없다'고 판단하면 오산. 그는 자신있게 강조해왔다. 그는 그가 원하는 세계 속에서 살았고, 원하는 방식으로 살았고,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사진에 에이즈 환자나 사형수처럼'죽음'이 자주 등장했던 건 왜일까. 센세이셔널한 소재를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그는 또 이런 말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죽음이 최후의 포르노적인 이슈가 될 것"이라고. 인간이 죽음에 달했을 때 절대 안락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 그런 의미에서 전쟁도 포르노고, 죽음도 포르노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상당수 광고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 같이 아름답게만 색칠돼 있다는 사실"에 반기를 들었다.

이렇게 자신의 머릿속을 찍어왔다는 그가 과연 언제부터 사진작가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을까. 그 대답도 걸작이다."난 태어날 때부터 예술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