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에 이끼 낀 작은 정원석을 배치하고 곰상스럽게 만들어 놓은 연못은 소일거리가 없는 이 집 노인의 손장난이었던 것이다.’ 박경리 소설 ‘토지’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곰상스럽게’는 무슨 뜻일까요. ‘곰’과 ‘상스럽다’는 말이 합쳐진 것이니 ‘곰처럼 상스럽다’가 정답일까요? 아니면 곰 얼굴(相) 처럼 생겼다는 말일까요? 여기선 성질이나 행동이 잘고 꼼꼼한 데가 있다는 뜻입니다. 성격이 싹싹하고 부드럽다는 뜻으로도 쓰이는 우리말입니다.

교열기자 출신인 장승욱씨가 이번 주에 펴낸 ‘사랑한다 우리말’(하늘연못)엔 ‘한국사람이라면 꼭 알아둬야 할 쓸모 있는 토박이말 205가지’란 부제가 딸려 있습니다. 단어마다 문학 작품에서 사용된 용례를 먼저 든 뒤 뜻 풀이와 비슷한 우리 말을 소개합니다. 심심파적으로 넘겨도 흥미로운 얘기 거리가 많습니다. ‘병일은 곰비임비 술을 들이켰다’(현진건 소설 ‘적도’) 아리송하신가요? ‘곰비임비’는 배철수가 보컬을 맡았던 송골매의 ‘하늘나라 우리 님’에도 나오는 말입니다. 어떤 일이 계속 일어남을 나타내는 말이지요.

다음 주는 한글날이라 그런지 우리 말 관련 책들이 여럿 나왔습니다. 공학박사 출신이자 초전도체합성 전문가이면서 우리말 학습에도 일가견이 있는 원동연 박사가 중심이 돼 펴낸 ‘이것이 한국어다’(김영사), 김영욱 서울시립대 교수가 한글 창제와 관련된 일화를 모은 ‘한글’(루덴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을 위한 ‘한국어 연어사전’(커뮤니케이션북스), ‘다시 살려 써야 할 우리말 사전’(자유로운 상상)….

펄 벅 여사는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고 가장 단순한 글자다. 이 24개의 부호가 조합될 때 그것은 인간의 목청에서 나오는 어떤 소리도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화면을 쳐다보지도 않고 엄지손가락만으로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는 것을 보면, 한글은 정말 쉽고 편리하게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의 노고를 새삼 느끼게 하는 10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