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결한 선율과 폭발적 연주를 뒤섞어 시대의 맹목(盲目)을 통렬하게 공격, 영웅으로 추앙 받던 3인조 록 밴드 너바나(Nirvana). 수많은 젊은이들을 충격에 몰아넣은 리더 커트 코베인(Cobain)의 엽총 자살(94년)과 함께 밴드의 음악은 종말을 맞았다. 하지만 남겨진 멤버들의 음악도 끝난 것은 아니었다. 코베인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드러머 데이브 그롤(Grohl)이 스틱을 내던지고 기타를 잡으며 시작한 밴드 푸 파이터스(Foo Fighters)는 10년 이상 꾸준히 활동하며 비평적, 상업적 성공을 일궈냈다. 오늘의 록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스타. 5장 앨범을 통해 1500만여장 판매고를 올렸다. 최근 새 앨범을 발표한 푸 파이터스의 데이브 그롤을 이메일로 만났다. 그는 한국에 대한 애정을 쏟아내며 말문을 열었다.

6집‘에코스, 사일런스, 페이션스 앤드 그레이스’를 발표한 록밴드 푸 파이터스. 맨 왼쪽이 리더 데이브 그롤.

“어린 시절 가장 친한 이웃이 한국 가정이었어요. 김치 독을 같이 정원에 묻을 정도로 한국 음식을 많이 먹었죠. 지금 살고 있는 워싱턴에서도 우래옥을 자주 가고 있어요.”

푸 파이터스는 직선적이고 명확한 기타 리프(반복되는 선율)를 앞세우는 밴드지만 스타일이 자유로워, 듣는 이에 따라 너바나(Nirvana)를 느낄 수도,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을 읽을 수도 있다. 그는 “어떤 세분화된 장르를 추구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저 록을 할 뿐”이라며 “이번 앨범에는 밴드의 어쿠스틱한 측면과 록적인 측면을 고루 담아내는 데 신경을 썼다”고 했다.

너바나는 그의 음악 인생에 어떤 의미였을까?

“너바나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시대의 상징이 돼 있었죠. 모두에게 자랑이자 부담이었어요. 너바나의 해체 이후에는 집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이었죠. 어쨌든 너바나를 통해 저는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기반을 얻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즐겁게 음악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죽은 커트 코베인에 대해 그는 “말이 없었지만 사랑, 인생, 음악이 정말 무엇인지 알았던 친구였다”며 “그가 죽은 다음 느꼈던 상실감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했다. “친구이자 밴드의 멤버이자 시대의 가장 위대한 뮤지션 중 하나를 잃었으니까요. 너바나가 얼마나 오래 갔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확실한 건 우리는 잘 지냈다는 겁니다.”

너바나에서 드럼을 쳤던 그는 코베인의 요절 이후 “드러머는 더 이상 내 미래가 아닌 것 같다”는 것을 느꼈고,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어 기타와 노래를 맡았다. 그를 드러머로 쓰고 싶어하는 숱한 유명 밴드들의 손길을 거부한 결정이었다.

푸 파이터스의 성공에 대해 그는 “겸손한 멤버들이 서로를 아끼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했다. “세상에 수많은 훌륭한 밴드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나서라기 보다는 운이 좋았고 각자의 음악에 대한 열정이 뜨거워 세상의 인정을 받고 있는 거겠지요. 하지만 아직 멀었다고 생각해요. 잠을 더 줄여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