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조선일보의 지해범 국제 전문 기자의 블로그에 최근 실린 글입니다.
개방과 함께 날로 심각해지는 중국내 매춘 문제를 잘 나타내는 글이어서 chosun.com에 게재합니다.
“따르릉”
호텔방의 전화벨이 울린다. 밤12시를 넘긴 시간이다. 잠들려다가 수화기를 집어 든다.
“니 야오뿌야오 샤오지에(要不要小姐 당신 아가씨 필요해?)”
“뿌야오(不要/필요 없어)”
전화를 끊고 다시 잠을 청한다. 15분도 안되어 전화벨이 또 울린다. 똑같은 여자 목소리다. “여자 필요 없으니 전화 걸지마” 소리치고는 전화선을 뽑아버린다. 전화를 거는 곳은 호텔 내 안마업소다. 겉으로는 ‘중의(中醫)안마’란 간판을 내걸었지만 주업은 매춘이다.
이들은 호텔로부터 투숙객의 명단을 넘겨받아 새벽까지 끊임없이 유혹의 전화를 걸어댄다. 몇 년 전 중국 동북지방으로 출장 갔을 때 겪은 일이다. 중국에서 이런 유혹을 이겨내려면 상당한 의지가 필요하다. 성인도 그럴진대, 성적 호기심이 많은 청소년들이야 어떻겠는가.
중국은 시장경제 개혁 30년 사이에 거대한 성(性) 매매 천국으로 변했다.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어디를 가나 유혹의 손길이 뻗어온다. 술집 노래방(가라오케) 안마업소 사우나 등은 ‘쉽고 싸게’ 성적 서비스를 제공한다. 연간 10%가 넘는 초고속 발전의 이면에 어두운 독버섯이 자라고 있다. 이런 유흥업소에 100만명에 육박하는 에이즈 환자가 없으리란 보장이 없다.
중국 유흥업소의 주요 고객 중 하나는 한국인들이다. 올 2월말 중국 해남도(海南島) 한국 골프 관광객들의 탈선현장을 취재하러 갔을 때, 현지의 조선족 가이드는 “여기 골프 치러 오는 한국 남자의 90%가 여자를 찾는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이나 친구끼리 와서 건전하게 운동하고 맛있는 것 먹고 돌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상당수 한국인은 골프보다 여자가 목적”이라고 했다.
‘값싼 골프여행’을 내건 국내 여행사와 중국 현지 여행사 가이드, 중국 매춘업소, 주변 시선을 피해 외국에서 즐겨보겠다는 한국 남자들이 만들어낸 기막힌 현실이다.
이런 현상은 하이난 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북경(北京) 상해(上海) 천진(天津) 대련(大連) 청도(靑島) 위해(威海) 광주(廣州) 심천(深圳) 곤명(昆明) 등 한국인이 많이 찾는 도시에서는 밤마다 비슷한 현상이 벌어진다. 노래방에는 한국인들로 넘친다. 중국의 노래방은 늘씬한 도우미 여성들이 나온다. 이들에게 주는 팁은 최소 300위안(약 4만원)이다. 힘들게 번 달러가 중국 매춘업소에서 술술 새고 있다.
최근 중국으로 수학여행을 떠난 경기도 내 일부 고교생들이 현지에서 성 매매를 했다는 방송보도가 나와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충격 받을 일이 아니다. 이미 그 고교생들의 아버지나 삼촌 연령대의 일부 한국 남자들이 중국에서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뀐 것은 연령층이 10대로 내려왔다는 것뿐이다. 한국의 고등학생이라고 해도 중국 매춘 업소의 눈에는 단지 ‘또 하나의 한국인’일 뿐이다.
성(性)은 개인의 영역이어서,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타인이 간섭하거나 싸잡아 비난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가령 노총각이나 홀아비에게 똑같은 자를 들이댈 수는 없다. 하지만 현재 중국에서 벌어지는 일부 한국인들의 행태는 문제가 있다. 이들은 중국에 도착하면 언행(言行)을 조심하기는커녕 마치 ‘해방구’에 온 것처럼 탈선을 일삼는다.
이들 때문에 중국의 유흥업소에서는 ‘한국인은 돈이 많고 여자를 밝힌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그래서 몇년전 북경에서 한국인을 납치해 몸값을 요구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들이 뿌린 씨앗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중국의 유흥업소로부터 ‘유혹의 전화’를 받은 것은 아닐까.
수학여행을 간 학생들은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있는 호텔방으로 지하 안마업소에서 전화가 왔다”고 말했다. 그 호텔은 일부 한국 골프관광객들이 성 매매를 하는 곳으로 알려졌다. 유혹이 늘려있는 중국의 현실을 보여준다.
이런 사정을 모르고 학교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그곳으로 데려갔다면 무지한 것이고, 만약 알고도 데려갔다면 오염된 강물에 아이들을 빠뜨린 것이나 다름없다.(수학 여행지를 사전 답사한 선생님이 있을텐데...) 이 학생들에게 수학여행은 꿈과 낭만으로 가득 찬 ‘추억 만들기’가 아니라,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경험일 것이다.
중국에서 한번 성 매매를 경험한 아이는 국내에 돌아와서도 ‘매매춘(買賣春)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 또 훗날 기회가 되면 ‘해외 매춘여행’을 떠나려 할 지도 모른다. 학교 측은 아이들에게 큰 후유증을 남긴 셈이다.
중국으로 수학여행을 계획한 학교들은 지금이라도 '건전한 환경'을 갖춘 수학 여행지를 찾을 필요가 있다. 중국내에서도 환경이 더 나은 곳을 찾거나, 다른 국가 혹은 국내 여행지를 선택할 수도 있다.
또 기성세대는 스스로 해외에서 행동을 절제해야 한다. 정부와 여행업계는 ‘매춘여행’을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제2의 ‘고교생 해외 매춘 수학여행’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