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미국 강단을 점령하고 있는 철학의 주류는 형식논리학과 언어분석에 바탕을 둔 분석철학이다. 그러나 아마도 미국적인 특징을 담고 있는 미국 철학을 말하라고 한다면 누구나 프래그머티즘(실용주의)을 내세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프래그머티즘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가치의 갈등을 중재하면서 강력한 국가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미국인들의 진취적인 생활방식을 반영하는 미국 고유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사상으로서의 프래그머티즘은 리처드 로티(Richard Rorty)가 네오프래그티즘을 제창하고 나서기 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조차 잊혀진 유물이었다. 그러나 미국인들의 일상적인 생활방식이나 습관으로서의 프래그머티즘은 언제나 미국적인 모든 것의 표상이었다. 미국의 문화적 산물인 프래그머티즘은 과학과 종교, 본질주의와 세속주의, 전체주의와 민주주의 등의 가치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다윈의 진화론적 자연주의를 토대로 미국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시키기 위한 지적인 노력이었다.

이 책(Reconstruction in Philosophy·1920)의 저자인 존 듀이(John Dewey·1859~1952)는 제임스(W. James)와 퍼스(C. S. Peirce)에 의해서 주창된 프래그머티즘을 계승하여 미국의 철학으로 완성시킨 사상가로서 20세기를 대표하는 미국의 지성이다. 아마도 듀이만큼 전문가와 대중으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받은 철학자도 드물 것이다. 그는 비단 철학의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미국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듀이는 1937년 멕시코에서 열린 트로츠키 조사위원회의 의장을 맡았는데, 이것은 그가 당시 좌, 우파 모두로부터 신임을 얻고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그는 민주주의 교육을 위한 실험학교를 세워 교육학의 영역에서도 매우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이 책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에 있었던 일본강연 원고를 묶은 것이다. 듀이는 동경제국대학의 초청을 받아 1919년 2월부터 3월까지 강연을 했으며, 이듬해인 1920년 강연에서 발표한 원고를 모아 이 책을 출판했다. 이 책은 그의 중기 저작에 속하는 중요한 저서이다.

듀이는 언제나 철학이 현실의 문제를 떠나 형식적인 사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으며, 인류의 거시적인 문명사적 발달과정을 통찰하는 가운데, 현시대가 요구하는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철학적 과제라고 믿었다. 이 책은 형식주의에 경도되고, 텍스트에 안주하는 지적인 태도에 경종을 울리면서 철학이 어떤 문제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가를 열정적으로 토로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듀이는 이 책이 처음 출판된 지 25년이 되던 해에 이 책의 서문을 다시 썼다. 그는 세계대전으로 인해 불안하고 불확실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철학은 미래 사회에 대한 어떤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철학이 그런 역할을 떠맡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 거듭나야 하는가를 논한 것이 이 책의 내용이다. 듀이는 초월주의에 기반을 둔 전통적인 제도와 관습, 도덕관념은 변화하는 시대에 올바른 전망을 제시해 주지 못한다고 보고, 철학적인 사유에 과학의 방법론(관찰, 가설로서의 이론 그리고 실험적 테스트라는 방법)을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그는 철학이 “새로운 과학에 의해 일차적으로 발생한 혁명에서 유래된 인간의 미래에 대한 구성적인 의미를 관찰하고 진술하는 체계적인 시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내용들은 1929년에 출간된 ‘확실성의 탐구’에서 체계화된 프래그머티즘적 방법론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담고 있다. 또한 이 책은 20세기 후반에 미국 학계에서 프래그머티즘을 부활시킨 리처드 로티에 의해서 가장 빈번하게 인용되는 듀이의 저서이기도 하다.

듀이는 미국의 민주주의가 실패할 수도 있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했지만, 결코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철저하게 세속주의를 견지한 듀이의 프래그머티즘은 세계 경찰을 자처하면서 오른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는 오늘날의 미국을 바로잡을 지적인 유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