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하은이 물병은 챙기셨어요?"
지난 9월 10일 오전 서울 신림동 국제산장 아파트, 현관 문을 연 황햇님(25)씨가 시어머니인 조광숙(47)씨에게 말했다. 거실 쪽에서 손녀딸 머리를 빗겨주던 할머니 조광숙씨, 그는 1960년생으로 50세도 안된 '젊은 할머니'다.
황씨가 지프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기름이 다 떨어졌네. 어머니, 저 오늘 한푼도 안 갖고 왔어요." "그래."
서해대로를 달려 두 시간 만에 충남 서산 해미읍에 있는 왕할머니(홍옥순씨) 집에 도착했다. “어머님, 저희 왔어요.”(조광숙씨) “할머님, 하은이 엄마 왔어요.”(황햇님씨) 선광채(74)씨와 그의 부인 김안순(68)씨가 고추밭에서 달려나왔다. 선씨는 증손녀에게 “우리 토끼 보러갈까?”라며 했고 하은이는 강아지를 주무르며 괴롭혔다. 마루에 앉아있던 홍옥순(93)씨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조금 전까지 황햇님씨의 시어머니였고, 하은이의 할머니였던 조광숙씨가 68세 시어머니와 93세 시할머니 앞에선 ‘꼬마 며느리’로 바뀐 듯하다.
5대 가정의 최고 어른인 홍옥순씨(1대)와 그의 며느리 김안순씨(2대), 김씨의 며느리 조광숙씨(3대), 조씨의 며느리 황햇님씨(4대), 그리고 황씨가 지난해 낳은 딸 하은(5대)이가 한자리에 모였다. 홍씨 가족은 지난해 11월 대한의사협회와 한국노바티스가 ‘대대손손 건강하고 행복하게’를 슬로건으로 내건 ‘5대 가족 한마당’ 행사에서 ‘사이좋은 5대 가족상’을 받았다.
1914년 전북 고창에서 홍옥순씨가 태어난 뒤 2006년 하은이가 태어나 ‘5대 가정’을 이룰 때까지 92년이 흘렀다. 홍씨의 직계 가족 수만 현재 74명. 맏아들·맏며느리들만 일주일에 한 번씩 모이는 자리가 1년에만 60번이다. 몇 명만 모여도 밥그릇과 수저가 30개씩 필요하고, 명절 때 제대로 모이면 70명 가까이 된다. 김장 김치를 500포기 담그는 일은 이들 가족에게 일상이다.
추석 명절을 맞아 ‘명절증후군’이 따로 없다는 이 집안의 맏며느리들을 만났다. “사람 수가 조금 늘어난다 뿐이지, 모이는 것이야 어차피 늘 모이는 것이죠. 워낙 일이 많아 그렇지, 명절이라고 특별히 달라질 건 없어요.”(3대 조광숙씨)
고부갈등? 오래 살다보면 말이 필요없어
"할머님, 며느리 시집살이 많이 시키셨죠?" "넷이나 되는데 시키긴 뭘 시켜?" "맏며느리가 좀 다르죠?" "다 똑같지 뭐, 거기서 거기야." 홍옥순씨가 말했다. 이 집의 맏며느리들은 "시집살이를 안해봐서 시집살이 시킬 줄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시집살이라는 게 어디 누가 꼭 작정을 하고 시켜서 시집살이인가.
김안순씨는 시어머니인 홍옥순씨와 함께 한 세월만 50년이다. (친정 어머니는 열여섯 살에 잃었다.) "시어머니 마음을 훤히 읽으시겠네요." "당신 속도 알고 내 속도 다 알고 그렇지 뭐. 말이 필요없어." "그래도 시어머니라 어렵죠?" "물론 어렵고 그렇지. 시어머님이니까."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홍씨에게 맏며느리를 처음 본 때를 물어봤다. "내가 선보러 가서 봤더니, 다 컸더라고." "며느리 삼고 싶으셨어요?" "뭐, 그냥. 닭하고 토끼하고 잘 산다고 하더라."(선광채씨가 닭띠생, 김안순씨가 토끼띠생이다.)
며느리인 김씨에게 시어머니 홍씨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아믄, 호랭이같이 무서웠지. 잘해주면서도 엄하고." 홍씨에게 "돌아가시면 누가 제일 많이 울 것 같으냐"고 했더니 "넘들이 울거나 말거나"라며 딴청을 피웠다. 며느리인 김씨는 시어머니가 세상 떠나도 안 울 것이란다. "며느리는 안 울재, 딸도 아닌데 뭘 울어. 구십 살 넘은 시어머니 돌아가셨는데."(김안순씨) 홍씨 입장에서 섭섭하진 않을까. "섭섭한 것 알면 그게 죽은 거여?" (홍옥순씨)
이 집에선 홍씨가 과거에 며느리들 군기를 잡았을 뿐, 큰 소리 내고 야단치는 사람이 없다. 2대인 김안순씨도 상대방이 답답해할 만큼 말이 없는 편이다. 그에게 "시어머니가 싫어서 시금치도 안 먹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더니 "넘들은 그런다고 하는디 우린 그런 생각 없어"란다.
김씨의 맏며느리인 조씨는 솔직하게 표현하는 스타일이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다 말해. 맺힌 것 있으면 다 말해."(김안순씨) 그는 며느리 네 명이 다 마음에 든다면서 "그래도 저 놈이 맏이라 그런지 제일 낫다"고 했다.
"맏며느리는 하늘이 내는 거여"
홍옥순씨가 김안순씨를 며느리로 맞은 때가 1957년. 그때부터 지금껏 이 집안의 고부(姑婦) 스토리야 역사책으로 써도 모자라다. 50년 세월 동안 홍씨와 김씨가 언성을 높이며 싸운 적도 많았다. "아믄, 의견 다르면 암만 시어머니라도 싸워. 그래야 회포가 풀어져. 다 그러고 사는 거여."(김안순씨) "저 아이가 속은 길어(좋아). 답답하긴 하지만."(홍옥순씨)
4대로 이어지다보니 1대 홍옥순 할머니가 3대 며느리에게 2대 며느리 흉을 볼 때도 있고, 3대 며느리가 2대 며느리 편을 들기도 한다. 4대 며느리가 얼마 전 시할머니인 2대 며느리에게 화장품 세트를 선물했다고, 시어머니인 3대 며느리의 칭찬을 듣기도 했다.
자기네끼린 고부 관계로 부대끼며 살지만 여기에 다른 식구들이 섞이면 상황은 달라진다. 며느리가 몇 명씩 되더라도 명절 준비에서부터 집안 대소사를 챙기는 일은 모두 맏며느리의 몫이다. 그러다보니 '맏며느리 대(對) 다른 며느리' 같은 전선이 형성되기도 한다.
2대인 김안순씨나 3대인 조광숙씨 모두 "맏며느리는 참고 희생하고 베풀어야 한다"며 "맏며느리는 하늘이 낸다고, 깍쟁이는 절대 맏며느리는 못한다"고 했다.
조광숙씨는 얼마 전 며느리에게 "나중에 너희는 우리만 책임져라. 우리 시부모님은 우리가 책임지마"라고 했다. 층층시하 어른들 모시는 일을 모두 떠맡지 말고 바로 윗대만 돌봐서 부담을 줄이자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한들 자신의 시아버지, 시어머니만 챙긴다는 게 어디 말처럼 쉽겠나. 지난해 중풍과 허리 수술로 고생한 68세 며느리가 노환을 앓는 93세 시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갈 일도 생기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주말마다 서산에 내려가 1대 할머니를 목욕시키는 일은 조씨 몫이 된다. "제가 '할머니, 저 말고 다른 며느리들에게도 목욕시켜 달라고 하세요' 했어요. 그랬더니 '다른 애들이 하면 안 시원해' 이러신다니까요."(조광숙씨)
"모여 살다보니 부부싸움도 못했어요."
요즘 선권수씨의 32평 아파트엔 선씨 부부와 아들 내외, 손녀딸 이렇게 다섯 명이 산다. 하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이 집에서 9명이 살았다. 시할머니와 시부모, 아들과 딸, 그리고 시동생 두명….
사실 그때는 좀 나았다. 결혼한 뒤 서울 신림동에 있는 2층 주택에서 살 땐, 열한 명이 2층의 방 두 칸에서 나눠 잤다. "시동생들을 키우다시피 했지만 한 방에서 잘 땐 눈치가 보여 먼저 눕지도 못하겠더라고요."(조광숙씨)
그렇게 3년 보낸 뒤 선권수씨 부부와 아이들은 아래층 방 한 칸으로 옮겼다. "싸울 때 소리도 못 질러 쿡쿡 찔렀는데 우리 방이 생기니까 세상 좋더라고요." (웃음)
2년 전 결혼한 선진국씨 부부는 부모님과 살고 있다. "친구들이 저보고 '대단하다'고 해요. 하지만 시어머니께서 다 챙겨주시고 얹혀사는 거죠."(황햇님씨)
아무리 잘해준들 시부모랑 사는 게 편하기만 할까. "결혼하자마자 같이 산 게 아니라 따로 살다가 시댁에 들어가라고 했다면, 아마 어려웠을 것 같기도 해요." (황햇님씨)
"저도 수십 년 시할머니, 시부모님과 살다가 따로 살아보니 정말 편하고 좋더라고요. 애들은 어떻겠어요? (웃음) 얘네들도 계속 평생 끼고 살 생각은 없어요."(조광숙씨) 2대 김안순씨는 "시어머니랑 따로 산다는 것, 상상도 못해봤다"고 했다.
"깍쟁이는 맏며느리 못해"
어렵게 인터뷰 약속을 잡았는데 인터뷰 이틀 전날, 비상 상황이 벌어졌다. 4대 며느리인 황햇님씨가 오후에 피아노 레슨이 있어서 서산에 내려갈 수 없다는 것이다.
당황스러웠지만 내심 '시아버지가 압력을 넣으면 어떻게 되겠지' 싶었다. 일부러 황씨에게 연락도 않고 시아버지 선권수씨에게만 부탁 전화를 걸었다. 한데 아니었다.
"오늘 시아버지 압력으로 나오신 거죠?"
"아니에요."
황씨가 결국 인터뷰에 응하게 된 것은 남편인 선진국씨가 "교회에 열심히 다니겠다"고 맹세했기 때문이란다. "시아버지가 명령해도 소용없나봐요." "지난해부터 5대 가정이라고 취재 요청이 오는데요. 우리가 장사를 하면 돈 버는 데 도움이라도 되지, 그것도 아니잖아요. 사람들 모여야 하고, 시골까지 움직여야 하구요."
사실 조씨와 황씨 고부 간에는 특별한 공통점이 있다. 조씨는 아들이 연애할 당시 "햇님이가 마음에 드니까 '속도 위반'이라도 해서 결혼 서두르라"고 농을 했다. 그런데 정말 결혼 전 햇님씨가 아이를 가졌다. "결혼은 하은이 아빠랑 할 생각이었지만 대학원 공부 마친 뒤에 하려고 했었거든요."(황햇님씨)
서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차 속이었다.
"아들 진국씨를 1981년 낳았으니 1980년쯤 결혼하셨겠네요."
"아니, 그게 아니라 결혼식은 1984년에…."
"그러면 어머니도 '속도 위반' 한 건가요?"
"아이구, 다 들켰네. 우리 아들이 아이부터 가졌다니까 사람들이 '아빠 엄마 꼭 닮았네'라고 놀렸어요."
조씨는 출산 예정일을 일주일 앞두고 짐 싸들고 시집에 들어갔다. 면사포는 둘째 딸 진영씨를 낳은 뒤에야 쓸 수 있었다.
평소 잔소리가 없는 조씨지만 시골 어른집에 내려가기 전엔 며느리 황씨에게 당부하는 게 많아진다. "우리 앞에선 괜찮은데 할머니들 앞에선 남편 이름을 막 부르지 말아라" "앉을 땐 책상다리 하지 말고."
며느리 황씨는 "네" 하고 답하지만 서산에 내려가면 버릇대로 "진국아, 이리와" 이럴 때가 다반사다. 그는 꾸지람을 들어도 싫은 기색을 잘 안하고 쾌활한 편이다.
홍씨에게 요즘 신세대 며느리에 대해 말해봤다. "꼬부랑 글씨(영어) 때문에 시애비, 시애미 모르는 것들 많지. 그러니까 갈라서고 그러재."(홍옥순씨) 그에게 하은이 엄마(황햇님씨)가 마음에 드냐고 물어봤다. "(맘에) 안 들면 뭣 할 것이여? 근데 잘 들어왔어. 깝깝한 놈보다 낫지. 여시하고는 살아도 곰하고는 못 살어."
5대 가정의 맏며느리들에게 여자들만 시집살이 하느라 고생하는 것 같지 않느냐고 물어봤다. “남자들도 일 많이 해. 김장할 때도 얼마나 잘 하는지 몰라.”(2대 김안순씨) “우리 집 남자들이 좀 자상해요. 70세 넘은 아버님도 설거지 도와주시는데요.”(3대 조광숙씨)
그렇다면 다시 태어나도 여자이고 싶을까. “음, 여자로 태어나는 게 나아. 남자로 태어나면 밥벌이 하느라 고생혀.”(김안순씨) 옆에 있던 1대 홍옥순씨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3대 며느리인 조광숙씨 말은 달랐다. “저는 남자로 태어날래요. 시댁 어른들 층층시하에서 살지 않고 소리 좀 지르고 살아볼래요.”(웃음) 4대 며느리 황햇님씨는 “글쎄 잘 모르겠다”고만 했다. 김안순씨에게 “평생 남편이나 시댁 식구들이 아닌 자신을 위해 산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런 적 없어. 아들 딸 많고 식구 많아서 정신없게 살았던 게지. 지금 나를 위해 살고 있는 거야.”
1대 “시집살이 안 시켰어…그래도 맏며느리가 속이 제일 깊지”
2대 “시어머니는 잘해줘도 무섭지… 50년 살다 보니 말 안 해도 속 다 알아”
3대 “시동생들 키우다시피 했어요… 시부모님과 따로 살아보니 좋긴 좋데요”
4대 “친구들이 대단하다는데, 사실 어머님이 밥 다해주시고 얹혀 사는 거죠”
"제일 좋았던 때?" "애들 낳았을 때…"
충남 서산 해미읍의 전원주택에서 만난 홍옥순씨는 손을 잡으면 한동안 놓질 않았다. "할머님, 참 건강하시네요." "아니야, 사람은 절대 오래 살면 못써. 80년 살면 딱 좋아."
그에게 60년 전 떠난 남편에 대한 인상이 남아있을까. "보고 싶으면 뭐한다요. 나 놔두고 가버렸는데." "살면서 가장 좋았던 때가 언제예요?" "어, 애들 낳았을 때…."
옆에 있던 3대 며느리 조씨가 "저보고는 '애들에게 질렸어' 그러시더니 증손주(선진국) 보시곤 많이 좋아하셨다"고 했다. 그러니까 옆에 있던 2대 며느리 김씨가 한마디 거든다. "어머니가 내가 진국이 아버지(선권수씨)를 낳았을 때, 참 좋아했지. 결혼하고 3년 만이었거든."
이 맏며느리들은 자녀를 낳아서 집안의 대를 이었고, 또 그렇게 기쁨과 감동을 이어왔다. 요즘 이 집안의 걱정거리라면 홍옥순 할머니를 비롯해 선광채·김안순씨 부부의 건강 문제다. 지난해 초만 해도 괜찮았는데 지난해 말 선씨 부부가 모두 중풍을 앓았다. 1000평 되는 텃밭에 배추, 시금치, 고추, 마늘, 부추를 키워 자녀들에게 '부모님표 채소'를 주는 게 낙이었는데, 기력이 자꾸 떨어진다. 김씨는 "큰 아들(선권수씨)이 정년 퇴직하고 하루 속히 내려와 같이 살면 좋겠다"고도 했다.
3대 며느리 조광숙씨는 "아들 진국이네가 둘째 아이를 빨리 낳으면 좋겠다"고 한다. 4대 며느리 황햇님씨는 내년에 있을 피아노 독주회 준비로 바쁘다. 언젠가 남편이랑 독일로 유학 떠나고, 봉사활동하면서 사는 게 그의 꿈이다.
거실에서 손녀딸과 놀고 있는 조광숙씨를 보며 시어머니인 김안순씨가 말했다. "애 같기도 하고, 어른 같기도 하고." 그랬더니 조광숙씨가 웃으며 답한다. "어머니, 저도 이제 할머니예요. 할머니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