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에 출간된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 1892~1971)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Moral Man and Immoral Society)는 1920년대의 미국 문명을 질타한 책이다. 니버는 이 책에서 인간 본성과 사회 집단의 죄악성을 무시한 채 지나친 낙관주의와 자기 만족에 빠진 미국의 정신을 가차 없이 비판하였다. 20세기 초 각계각층의 미국인들이 참여한 진보주의 개혁운동은 이성과 과학의 힘으로 미국사회의 진보를 이룩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꿈꾸었던 이상과는 달리 실제 결과는 천박하고, 이기적이고, 위선적이며, 침체된 문명이었다. 니버는 이들의 이상주의에 기여했던 철학자 존 듀이(John Dewey)의 세속적 자유주의는 물론이고 사회복음 운동의 기반이었던 종교적 자유주의를 비판함으로써 미국 지성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1892년 미주리 주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니버는 예일 대학 신학부를 나왔고, 1913년 디트로이트의 한 작은 교회에서 목회를 한 바 있으며, 1928년부터 유니온 신학대학(Union Theological Seminary) 교수로 재직하다 1960년에 퇴직했다. 그는 무려 20여 권에 달하는 저서와 약 2600여 편에 달하는 논문 및 평론을 썼던 열정적이면서도 금욕적인 사상가였고, 무엇보다도 당대의 사회와 현실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깊은 관조적 자세를 견지하였던 신학자였다. 1929년 대공황이 시작될 즈음 그는 마르크스주의에 기울어 사회당에 가입하고 부르주아 계급과 자본주의를 비판하였지만, 그의 그러한 태도는 대체로 박해받고 소외된 사람들 편에 서는 기독교 성직자의 기본적 자세로부터 나온 것이다.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니버는 개인의 도덕적 행위는 사회의 도덕적 행위와는 분명히 구별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원죄로부터 도덕적 한계를 갖고 있는 존재인데, 최선을 다하면 그래도 어느 정도 도덕적일 수 있지만, 사회 집단들의 행위는 결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당시까지 사회 진보에 대해 낙관적 태도로 일관하며 사회를 도덕적 차원에서 개혁하고자 했던 자유주의 지식인들에게 니버는 공격의 화살을 퍼부었다. 니버는 그들의 낙관주의가 현실의 복잡한 구조와 모순을 간과함으로써 인간의 조건을 더욱 고통스럽고 어렵게 만들었으며, 그로 인해 미국 문명은 활력을 잃고 혼돈과 침체에 빠지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니버는 인간 본성의 한계성을 지적하면서도 동시에 인간이 갖고 있는 가능성 또한 인식하였다. 그래서 니버는 모든 문명과 문화를 바벨탑으로 보아 진보의 의미를 비극적인 것으로 파악하면서도, 비극적인 것에 대한 의식을 통하여 비극을 넘어서 희망과 확신에 도달하고자 하였다. 이런 점에서 그는 자유주의 신학의 비판자면서도 동시에 자유주의 신학자로 분류된다. 오늘날 그의 사상이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 모두에 의해 여전히 수용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는 20세기 미국의 종교사상 및 자유주의 사상의 고전으로서 여전히 미국 지식인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의 사상은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냉전 시대 초기에 아서 슐레진저 2세(Arthur M. Schlesinger Jr.)를 비롯하여 조지 캐넌(George F. Kennan)과 한스 모르겐타우(Hans Morgenthau)와 같은 자유주의 지식인들에게 영향을 끼쳤고, 많은 좌파 지식인들을 각성시켰으며, 그 후 신보주의자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도 했으며, 누구보다도 1950년대와 60년대에 민권운동을 이끌었던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