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정아는 한때 국내외 미인대회를 쥐락펴락하던 미의 여신이었다. 91년 미스코리아 선, 이듬해 미스 인터내셔널 3위 등이 그녀의 자랑스런 성적표다. 늘 이쁘고 도도한 이미지를 간직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배우' 염정아는 작품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을 망가뜨릴 줄 아는 배우였다.
그런 염정아가 이번에도 제대로 망가졌다. 오는 목요일(30일) 개봉 예정인 영화 '내 생애 최악의 남자'(감독 손현희)에서 그녀는 '이보다 더 최악일 수 없는' 여성상을 훌륭히(?) 연기해냈다.
염정아가 연기한 오주연은 하고 싶은 건 하늘이 두 쪽 나도 꼭 해야 하고, 폭식, 폭음을 일삼는 광고회사 PD. 어처구니 없는 두 차례의 '음주 사고'로 10년지기 성태(탁재훈)와 결혼하게 되지만, 신혼여행 바로 다음 날 이상형(신성록)을 본 후 갈등하게 된다.
탁재훈과 연기자로 호흡을 맞추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실 '연기자' 탁재훈에 대해서는 걱정이 앞섰다. "코미디 부분이야 워낙 일가견이 있는 분이라 걱정하지 않았지만, 드라마 부분은 어떻게 할 건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처음 대본 리딩을 하는 순간 놀랐어요. 제가 생각하던 탁재훈이 아닌 거예요. 어찌나 진지하던지…. 탁재훈씨가 그렇게 수줍음이 많은 사람인 줄 처음 알았어요."
호흡은 척척 맞았다. 다만 코미디 부분을 어떻게 소화할 건지가 고민이었다. 나름 '여선생 VS 여제자' 등의 작품을 통해 숨겨진 코믹 본능을 발산하기도 했던 그녀였지만, 남을 웃겨야 한다는 데서 오는 중압감은 피할 수 없었다. 이 때 만능 재주꾼 탁재훈이 많이 도움이 됐다. 화제의 봉춤신도 그렇게 해서 탁재훈 연출, 안무로 탄생했다.
'내 생애 최악의 남자'는 그녀 개인적으로도 잊을 수 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의 크랭크업 후 '생애 최고의 남자'를 만나 웨딩 마치를 올렸고, 이제 뱃속에는 2세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그래서일까. 인터뷰 내내 염정아의 얼굴에서는 개봉을 앞둔 배우의 초조함보다는 여유로움이 물씬 풍겨졌다.
"아무래도 예전만큼 왕성한 활동을 하기는 힘들겠죠. 당장 조금 있으면 출산도 해야 하고….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한 작품을 하더라도 좋아하는 영화를 할 수 있는 행운이 따라줬으면 좋겠어요. 일단은 '내 생애 최악의 남자'가 잘 됐으면 좋겠구요."
영화팬이라면, 지금 그녀의 모습을 실컷 봐 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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