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허증이 없는 카 레이서가 있다. 국내 최연소 포뮬러(Formula· 가늘고 긴 차체에 바퀴가 노출된 1인승 경주 전용 차) 드라이버인 김종겸(수원 창현고1)은 겨우 열여섯 살. 우리나라에서 운전면허는 18세부터 딸 수 있어 그는 면허증도 없지만 서킷(경주용 도로)을 시속 200㎞ 가까운 스피드로 달린다.

이 앳된 레이서는 최연소일 뿐 아니라 포뮬러 종목에서 정상급 기량을 갖고 있다. 김종겸은 26일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열리는 ‘CJ슈퍼레이스 4라운드’ 포뮬러1800 종목의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다.

“학교 수업 때문에 연습을 거의 못했지만 이번에도 우승할 자신이 있어요.”

김종겸은 7월 1일 열린 3라운드 경기에서 2.125㎞짜리 트랙 20바퀴를 26분16초156의 기록으로 주파, 국내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웠다. 국내 유일의 포뮬러 자동차 경주인 포뮬러1800은 배기량 1800㏄, 150마력의 경주용 차를 쓴다. 세계 최고의 자동차 경주대회인 F1(포뮬러원)은 2400㏄, 8기통 엔진으로 최고 780마력을 낸다.

김종겸은 역시 레이서인 아버지 김영관(41)씨의 손에 이끌려 10살 때부터 카트(kart·초소형 경주용차)를 몰았다. “어릴 때부터 자동차를 워낙 좋아했고 아버지가 경주하는 걸 쭉 봤어요. 그러다가 소형 카트이지만 ‘진짜’ 자동차를 운전해 보니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레이싱 경력 12년의 김씨는 배기량 2000㏄급 양산차를 모는 투어링A에서 4차례 우승 경험이 있는 베테랑. 출전 종목이 다르기 때문에 부자(父子) 간의 대결은 아직 없다.

소년 시절부터 국내 카트 대회를 휩쓴 김종겸은 작년 여름 일본 ‘도요타 레이싱 스쿨’에서 본격적인 수업을 받은 뒤 한국자동차경주협회의 라이선스를 땄다. 그리고 작년 9월 최연소로 치른 포뮬러1800 데뷔전에서 당당히 3위에 입상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어린 나이에도 집중력이 좋고, 승부처에서 과감한 레이싱을 펼치는 게 그의 장점. “첫 경기 때 혹시 무섭지는 않았냐”고 묻자 그는 “카트보다 차체가 커져서 오히려 코너링 때 둔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장래 희망을 묻자 “레이서라면 당연히 F1 무대를 꿈꾸는 것 아니냐”고 했다. 작년에 은퇴한 ‘F1 황제’ 미하엘 슈마허를 가장 좋아한다는 김종겸은 “F1 선수들을 보면 2~3살 때부터 카트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엔 아직 모터스포츠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아 아쉽다”고 했다. 팀 동료이자 코치, 매니저 역할까지 하고 있는 아버지는 “고교 졸업 후 유럽으로 ‘레이싱 유학’을 보내 뒷바라지를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명색이 프로 레이서인데 서킷이 아닌 일반 도로에서 운전을 하고 싶은 ‘유혹’은 없었을까. 김종겸은 “법적으로도 안 되고, 아버지가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버지는 좀 더 ‘전략’적인 이유를 들었다. “시야가 높은 일반 차를 몰게 되면 (차체가 낮은)포뮬러 경기 감각에 지장이 생기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