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 가정으로 성(姓)도, 생김새도, 꿈도 다른 황정인·손빈희·손다빈 세 자매는 만 13~14세에 대학생이 됐다. 첫째 빈희는 지난 2005년 14세 나이로 부산 외국어대학교 법학과에 4년 장학생으로 합격했다. 둘째 정인이와 셋째 다빈이 역시 13세에 4년 장학생으로 호남대 중국어학과에 합격했다. 사람들은 이들을 특별한 영재인 양 바라보지만, 사실 초등학교 내내 이들은 참 평범했다. 13~14세 나이로 대학생이 된 세 자매의 공부 비결을 살펴봤다.

정인이의 꼴찌 탈출기

정인이는 초등학교 3학년까지 구구단도 외울 줄 모르는 아이였다. 하지만 엄마 윤미경씨와 함께 공부하면서 몰라보게 성적이 올랐다.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일기쓰기. 윤씨는 일기에 반드시 '무엇을 했다'는 식의 기록을 남길 필요는 없다고 가르쳤다. 그날 읽은 책의 감상을 적어도 좋고, 동시나 동화를 지어도 좋다고 했다. 심지어 머릿속을 스쳐간 터무니없는 공상이나 생각도 좋은 글감이 된다는 것이다. 일기를 쓰면서 띄어쓰기와 맞춤법에 자신감이 생기고 지루하던 글쓰기가 재미있어졌다.

일기쓰기가 익숙해질 무렵, 3학년 정인이는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로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구구단 외우기가 첫 번째 과제였다. 윤씨는 구구단을 외우게 하기 전에 원리부터 가르쳤다. "2×3=6이라는 건 2를 세 번 더했다는 뜻이야. 2+2+2=6이라는 계산과 똑같은 거지." 구구단을 외운 뒤에는 한 자리 숫자를 더하고 빼고 나누고 곱하는 연습을 했다. 두 자리, 세 자리, 네 자리 연산을 혼자서도 이해할 수 있게 되자 진도도 점점 빨라졌다.

다음 도전 과제는 책 읽기. 정인이는 매일 엄마와 책 읽는 시간이 가장 즐거웠다. 책을 읽고 나면 엄마는 반드시 소감을 묻곤 했다. “주인공이 정인이랑 닮은 거 같지 않니?” “너라면 어떻게 했을까?” 대화를 주고받은 뒤에는 항상 독후감을 썼다. 대화를 자주 나눌수록 독후감도 틀이 잡혀갔다.

3학년 겨울방학에는 1학년 교과서를 3번째 복습하고, 2학년, 3학년 과정을 차례로 공부했다. 잘못 푼 문제는 오답노트에 적어두었다가 여러 번 반복해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다른 과목도 마찬가지였다. 엄마와 같이 공부하면서 대강의 내용을 이해하고 부족한 점은 참고서나 인터넷에서 직접 찾아 해결했다. 완전히 이해했다 싶으면 동생 다빈이에게 공부한 것을 가르쳐줬다. 이런 식으로 같은 내용을 3번 반복해 공부하면서 꼴찌였던 정인이의 성적은 눈부시게 향상됐다.

빈희의 공부 계획 세우기

중국 유학 도중 부모님이 일년 먼저 한국으로 돌아가자 한동안 세 자매의 삶은 엉망이 됐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밥하랴, 집안일 하랴, 숙제 하랴 시간에 쫓기기 일쑤였다. 셋 중 가장 우등생이었던 빈희조차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빈희는 시간을 알차게 활용하는 방법을 궁리하다 연예인처럼 하루 스케줄을 짜보기로 했다. 한 달, 한 주, 하루 순으로 큰 목표를 정한 뒤 세부적으로 계획했다. 하루 계획은 너무 무리하게 잡지 않았다. 단어와 숙어를 하루 몇 개 정도 외우는 식이었다.

영어공부를 할 때도 미리 계획을 세운 것이 큰 도움이 됐다. 빈희는 단어장과 숙어장을 만들어 하루에 일정량을 외우고 정리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얼마나 외웠는지 매일 한 번씩 동생들에게 단어 테스트를 받았다. 이렇게 계획에 따라 공부하자 영어실력이 부쩍 늘어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영어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국말로 일기를 쓴 다음 영어로 옮기는 연습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한국말만큼이나 편안하게 영어로 일기를 쓴다. 중국어공부를 시작한 다음에는 중국어로 일기를 썼다.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사전을 찾으면서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표현하다 보니 자연스레 문법공부까지 할 수 있었다.

다빈이의 중국어 정복기

처음 중국에 도착했을 때, 다빈이는 중국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조선족들이 쓰는 초등학교 1학년 어문책으로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나, 너, 우리, 어머니, 아버지’ 같은 단어가 실려 있는 교재다. 어문책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단어 외우기와 쓰기에 들어갔다. 뭔가 쓸 만한 단어를 외운 날에는 동네나 시장에 나가 반드시 써보았다. 특히 친구들과 놀면서 사용한 말은 웬만하면 잊어버리지 않았다. 그래도 자꾸 잊어버리는 단어가 있으면 눈에 띄는 곳곳에 붙여놓고 외울 때까지 보고 또 봤다. 완전히 외웠다 싶으면 언니들에게 테스트를 받았다. 틀린 단어는 반복해서 읽고 썼다. 다른 언어와 달리 중국어 단어를 공부하는 데는 ‘시 외우기’가 좋다. 어휘력뿐 아니라 암기력까지 늘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중국어 듣기는 영화로 공부했다. 좋아하는 영화를 한 편 정해서 처음에는 자막과 함께 보다가 나중에는 자막을 종이로 가린 채 반복해 봤다. 이렇게 한 편의 영화를 몇 번이고 보면 나중에는 대사를 거의 외울 수 있다. 다소 지겨울 수도 있지만 어학 테이프나 학습용 비디오를 활용하는 것보다는 훨씬 재미있다.

>> 어떻게 대학 합격했나

손빈희, 황정인, 손다빈 세 자매는 대학 입학 전부터 유명인사였다. 지난 2005년 다빈이가 고입 검정고시에서 최연소, 정인이가 고졸 검정고시에서 최연소, 빈희가 고졸 검정고시에서 충북 전체 차석을 차지하며 합격했기 때문이다.

이들 자매는 한의사인 아빠 황석호씨의 유학 때문에 2년간 중국에 머물다 2004년 귀국했다. 중학교 진학과 검정고시 사이에서 고민을 무척 많이 했지만, 자신들의 꿈을 이루는 데 검정고시가 더 낫다는 결정을 내렸다. 엄마 윤미경씨는 "중국에서 20세에 교수가 된 중국어 교수를 만난 뒤 아이들이 큰 자극을 받았다"면서 "아이들이 국제변호사, 중국어 교수 등으로 일찌감치 꿈을 정했기 때문에 가족회의를 거쳐 검정고시로 대학에 가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야학에 다니며 윤씨가 만든 시간표에 따라 매일 규칙적으로 공부하며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논술과 면접시험에 대비해 신문 사설과 시사 상식 관련 서적을 온 가족이 함께 읽고 토론을 즐겼다. 정인이와 다빈이는 중국어능력시험인 HSK(한어수평고시)를 준비해 각각 8급과 6급 증서를 땄다. 그 결과 세 자매는 수시모집에서 각각 검정고시 출신 전형, 중국어 특기생 전형 등으로 나란히 대학에 합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