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모(일본 씨름)왕 아사쇼류(朝靑龍·26)가 마음 병을 앓고 있다. 일본스모협회가 보낸 전문의가 진찰해 보니 ‘급성스트레스 장애’라고 한다. ‘급성스트레스 장애’란 강한 충격을 받은 뒤 감정 반응이 사라진 몽롱한 상태로 불면증을 겪거나 외부에 과도한 경계심을 보이는 증상을 말한다. 최강의 스모왕이 왜 마음의 병에 시달리는 것일까?

# 7차례 연속 우승 등 스모 역대 기록 모두 갈아치워 

아사쇼류는 근대 스모 역사상 최강의 역사(力士)로 꼽힌다. '헤이세이(平成)의 대 요코즈나'란 별명도 가지고 있다. '헤이세이'란 1989년 왕위에 오른 아키히토 일왕의 연호, '요코즈나'는 스모 선수가 오를 수 있는 최고 등급에 해당한다. 한마디로 '이 시대 최고의 스모왕'이란 뜻이다. 2005년 7차례 연속 우승(종전 기록은 6차례), 연간 전적 84승6패(종전 기록은 82승8패)로 역대 기록을 모두 갈아치우면서 그런 별명을 얻었다.

스모의 전투력은 보통 체중과 정비례한다. 경기 시작 직후 서로 거구를 날려 거칠게 부딪히는 '다치아이'의 기세로 대개 승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선수의 덩치가 클수록 유리하다. 스모 선수들이 과도하게 몸을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아사쇼류는 역대 다른 '요코즈나'와 비교하면 뚱보가 아니다. 몸무게 146㎏. 'K1' 무대에서 '동네북'으로 전락한 아케보노(215㎏), 무사시마루(237㎏)에 비하면, 플라이급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 부족한 체중을 탁월한 기술과 승부 근성으로 극복 

그가 대기록을 세운 것은 탁월한 기술과 승부 근성 덕분이다. 순간적 돌파력으로 상대를 밀어붙이면서 '도효'(씨름판) 밖으로 내모는 기술은 사상 최고로 평가된다. 사자가 토끼를 모는 것처럼 아무리 만만한 상대라도 마음을 풀지 않고 최선을 다해 승부를 내는 모습 역시 그의 대기록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그에겐 세 가지 약점이 있었다.

첫째, 일본인이 아닌 몽골인이라는 점이다. 일본 사회에서 아무리 국적 차별이 사라졌다고 해도 전통 스포츠 분야에서 자국인 챔피언을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아사쇼류는 일본에서보다 몽골에서 국민적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

둘째, 지난 7월 역시 몽골 출신인 하쿠호(白鵬)가 요코즈나에 오를 때까지 무려 4년을 라이벌 없는 챔피언으로 보냈다는 점이다. 무적의 챔피언은 오히려 경기의 인기를 떨어뜨린다. 지난 4년간 아사쇼류가 장악한 일본 스모가 그랬다.

# 상대 선수 차량 부수는 등 '도효' 밖 거친 행동 구설수 

셋째, 지기 싫어하는 기질이 '도효' 밖으로 이어져 거친 말투와 행동, 과도한 쇼맨십으로 일본 팬들에게 종종 비판을 받았다는 점이다. 고교 시절 일본에 스모 유학을 왔던 아사쇼류는 술에 취해 기물을 파손하고, 자신을 꺾은 선수의 차 사이드미러를 부수기도 했다. 기자회견 도중에 벌렁 드러눕기도 했을 정도로 돌출 행동을 자주 한다. '요코즈나'는 '도효' 안팍에서 철저한 자기 관리를 요구받는 자리다. 아사쇼류가 결정적으로 '맛이 간' 것은 이 때문이다.

아사쇼류는 지금 '꾀병' 파문에 휩싸여 있다. 지난달 25일 아사쇼류는 '허리 피로골절'을 이유로 전치 6주의 진단서를 일본스모협회에 제출한 뒤 여름 스모 시즌을 포기하고 "요양을 하겠다"며 고향 몽골로 떠났다. 문제는 비행기에서 일본 축구 스타 나카타 히데토시(中田英壽)를 만나면서 일어났다. 몽골축구협회가 주최하는 어린이 축구 행사에 나카타가 참여한다는 얘기를 듣고 흥분한 것이다.

아사쇼류는 자신이 요양 중이란 사실을 잊고 예정에도 없던 축구 행사에 나카타와 함께 참여해 공을 차고, 헤딩을 하고, 유연하게 몸을 돌리다 자빠지는 장면까지 연출했다. 이 장면이 일본TV에 보도되면서 '꾀병' 논란이 일어났고, 그동안 일본 국민들이 품고 있던 아사쇼류에 대한 반감이 일시에 폭발했다. 아사쇼류가 꾀병을 이유로 결장하는 여름 경기 개최지 주민들은 "일본 스모에 아사쇼류가 없어도 좋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국민 감정이 사나워지자 7월 31일 재일 몽골대사관이 일본스모협회에 몽골 정부 차원의 사과 공문까지 보냈지만 여론의 방향을 트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일본스모협회는 2개 대회 출장정지와 11월까지 집과 연습장 외에는 외출을 삼가라는 '가택연금' 명령을 내렸다. 일본 스모 사상 현직 요코즈나가 출장 정지 처분을 당한 것은 처음이다. 사실상 "넌 더 이상 필요없다"는 은퇴 권고를 받은 셈이다. 아사쇼류는 징계가 내려지자 "몸을 추슬러 다음 대회에 출장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충격을 극복하기 힘든 모양이다.

# 관대한 일본 사회도 오만한 사람은 용납 안해 

아사쇼류는 일본 사회를 만만히 보다가 밀려나는 케이스에 속한다. 일본 사회는 강자의 경우 오만한 모습을 보여도 일단 받아들이지만, 강자의 자리에서 흔들리거나 약점이 발견될 경우 가차없이 사회의 울타리 밖으로 내모는 속성이 있다. 인터넷 경제의 왕자로 군림했다가 구속된 호리에 다카후미 전 라이브도어 사장, 펀드 자본주의를 외치다 구속된 무라카미 요시아키 전 무라카미펀드 대표도 아사쇼류처럼 '오버'하다가 밀려난 경우다. 반면 실력과 성실성, 겸손함을 겸비하면 일본 사회는 일본인이건 외국인이건 받아들이고 존경하는 속성도 가지고 있다. 대만 국적을 유지하면서도 일본인의 우상으로 군림해온 홈런왕 오 사다하루(王貞治) 감독이 대표적인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