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가 ‘고양이’를 잡았다. 지난 3일 개막한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Man of La Mancha)가 두 달간 집권한 ‘캣츠’를 2위로 밀어내며 ‘8월 뮤지컬 TOP 10’ 정상에 올랐다. 이유리 청강문화산업대 교수, 조용신 공연칼럼니스트,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 등 뮤지컬 평론가 3명은 10월 말 폐막하는 ‘라이온 킹’을 3위로, ‘싱글즈’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공동 4위로 뽑았다.
‘맨 오브 라만차’는 스페인의 지하 감옥이 무대다. 신을 모독한 죄로 끌려온 작가 겸 배우 세르반테스(조승우)는 자신에게 익숙한 형태의 변론을 요청하고, 죄수들을 뽑아 즉흥극을 벌인다. 극중극은 스스로 돈키호테라고 주장하는 노인이 창녀 알돈자(김선영)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를 오가는 조승우는 파워풀하면서도 균형이 잘 잡힌 연기와 움직임으로 무대를 장악했다. 드라마가 응축된 ‘이룰 수 없는 꿈’을 비롯해 ‘맨 오브 라만차’ ‘둘시네아’ 등 그가 부르는 노래의 감정은 인물, 이야기와 단단하게 뭉쳐져 집중력을 높였다. 오그라뜨린 몸과 능청스런 말투로 빚어낸 조승우의 노역(老役)은 퍽 희극적이었다. 그와 함께 주인공을 번갈아 맡는 정성화는 상대적으로 진지한 인물을 구축했다는 평이다.
풍차에 창을 겨누고 알돈자의 걸레에서 향기를 맡는 돈키호테의 착각이 싫지 않은 뮤지컬이다. 세계를 자신의 헛것(이상) 쪽으로 잡아끄는 인물이라서 감동을 준다. “이 뮤지컬을 보고 인생이 달라졌다”는 조승우의 고백처럼, 순간이 영원이 될 수도 있음을 증명하는 작품이다. 가창력이 빼어난 김선영의 알돈자, 우스꽝스러운 이훈진의 산초 연기가 극을 받쳤다.
평론가들은 8월 개막작 중 조정석·송용진 주연의 ‘펌프 보이즈’, 발레 뮤지컬 ‘심청’, 기생 이야기 ‘해어화(解語花)’를 기대작으로 꼽았다.
▶9월 2일까지 LG아트센터. 1588-5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