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해설을 쓴 움베르토 에코에 따르면, 17세기의 프랑스 추기경 마자랭은 전임자인 리슐리외 추기경과는 달리 “고약하고 음흉하고 비열한 위선자”로 곧잘 묘사되곤 했다. 빚을 떼먹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는 비열한 배신자로 그려지기 일쑤였다는 것이다.
리슐리외 추기경의 뒤를 이어 프랑스 재상에 임명된 저자 마자랭은 루이 14세의 교육을 담당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있다. 나이 어린 국왕을 도와 절대 왕정을 확립하는데 크게 기여했으며, 베스트팔렌 조약을 통해 유럽 평화를 추진하기도 했다.
‘두 얼굴의 추기경’이 남긴 처세술에 대한 이 책은 최근 서점을 진열하고 있는 갖가지 실용서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철저하게 현실적이고, 전략적이며, 때로는 비열하기까지 하다. 영화 ‘스캔들’의 원작인 소설 ‘위험한 관계’에 등장했던 갖가지 음모와 권모술수를 압축해서 풀어놓은 것만 같다.
책의 첫 장은 ‘너 자신을 알라’는 경구로 시작한다. 소크라테스처럼 자신의 완성을 위해 무지(無知)부터 깨달아야 한다는 철학적 방법론이 결코 아니다. 반대로 마자랭이 권하는 지침은 이런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가져야 하고, 당신 자신의 비밀에 대해서는 그 누구에게도 발설해서는 안된다. 다른 사람들에 관한 비밀을 캐내는데 한 순간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이를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을 염탐해야 한다.”
내 표정을 숨기면서 동시에 남의 속내까지 캐낼 수 있어야 한다는 말로, 마자랭은 “내가 보기에 똑똑하고 능숙한 사람은 이렇게 처신하면서 곤란하고 어려운 상황을 넘기는 것 같다”고 능청스럽게 말한다.
당시 유럽의 궁정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세술로 읽히지만, 직접 집필한 책이 아니라 나중에 그의 말과 행동을 모은 격언집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에코는 “설령 그렇다고 해도 풍자적 관점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반론한다.
청탁을 하거나 부탁을 받을 경우에 대한 경구들은 지금 읽어도 즉시 써먹을 수 있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부탁을 할 때는 “당신이 그다지 원하지 않는데도, 어떤 사람이 애지중지하는 것을 부탁하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된다”, “부탁을 했다가 거절 당하면 언제나 기분이 상하게 마련이니 승낙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는 이상 부탁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거꾸로 부탁을 받을 때는 언제나 “곧바로 대답하지 말고, 오랜 시간 심사숙고한 뒤에 안된다고 거절하라”고 말한다.
실용서나 경세(經世) 서적에 써있는 말들을 그대로 따라한다고 해서 반드시 위인이 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모든 처세술 서적의 결정적 약점이다.
해설을 쓴 에코는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권력을 주무르는 정치인이 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는 말라. 다만 권력을 쥔 사람들은 이미 본능적으로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고 친절하게 조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