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Bergman·89)이 30일 고국인 스웨덴 파로섬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세상을 떠났다. 딸인 에바 베리만은 “아버지가 평화롭게 가셨다”고 밝혔지만, 사인은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인들은 지난해 10월 둔부 이식수술을 받은 뒤 베리만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다고 전했다.

페데리코 펠리니(Fellini), 장 뤽 고다르(Godard), 루이스 브뉘엘(Bunuel) 등과 함께 1950~60년대 유럽 최고의 감독으로 꼽히는 베리만은 영화를 예술의 반열에 끌어올린 인물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당시만 해도 영화를 원시적인 매체로 얕보던 지식인들은 “베리만을 통해 영화는 개인적인 통찰력을 표현할 수 있는 예술이 됐다”고 말을 바꿨다. 1918년 스웨덴 웁살라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0대부터 연극, 무대연출, 창작 희곡, 오페라와 라디오를 오가며 활발한 창작활동을 펼쳤다. 30대 이후에는 연극과 영화를 가로질렀고, ‘제7의 봉인’(1957) ‘산딸기’(1957) ‘처녀의 샘’(1960) ‘화니와 알렉산더’(1982) 등을 대표작으로 평생 50여 편의 영화, 100여 편의 연극을 연출·제작했다.

그의 영화는 당시 서구 지성의 한 축이었던 실존주의와 맞물려 “신은 있는가” “있다면 인간들은 왜 이렇게 서로 고독하고 고통스런 삶을 사는가” 등의 질문을 던졌다. 필요 이상으로 난해하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았지만, 이 평생의 작업을 통해 베리만은 유럽 예술영화 지형도를 새로 작성한 스타감독으로 대접받는다.

‘신의 침묵, 인간의 타락, 사랑의 파멸’로 요약되는 베리만의 초반부 작가적 관심은 이후 전지전능한 상상력을 지닌 예술가에게로 옮아갔다. 그 대표작이 ‘화니와 알렉산더’. 공식적인 은퇴작으로 꼽히는 이 작품에서 베리만은 10세 소년 알렉산더를 통해 “거미줄처럼 끝없는 상상력의 실을 자아내는 것이 바로 행복한 인생의 지름길”임을 설파한다. 이 작품을 포함해 3번의 오스카 외국어영화상을 받았고, ‘산딸기’(1957)는 칸영화제 감독상·베를린영화제 금곰상 등을 휩쓸었다. 평생 다섯 번 결혼했고, 여배우 리브 울만(Ullmann·69)과는 결혼하지 않은 채 딸(린 울만)을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