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타분하고 어려운 족보가 젊은 세대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서고 있다.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부산광역시립시민도서관 1층. 입구를 들어가 왼쪽 편에는 80여 평 규모의 ‘족보자료실’이 있다. 하루 평균 10~20여 명의 방문객이 찾는 이곳에 최근 초·중·고생에서부터 20대에 이르는 젊은 층의 발걸음이 부쩍 잦아지고 있다. 하루 평균 10~20여 명의 방문객 중 절반 가량이 젊은 세대다. 이들은 이곳에 정리돼 있는 122개 성씨, 447개 본관과 각 성씨의 족보 등 8500여 권을 이용해 자신의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등을 거슬러 올라가 자신이 누구의 후손인지 확인하는 작업들을 하고 있다.
방문객 김정민(27·부산 신평동)씨는 “본관, 항렬 등에서부터 집안에 대한 각종 질문을 사회 생활을 하면서 많이 받았는데 답변하기 힘든 경우가 많았고, 그럴 때마다 가정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취급을 받았다”면서 “이곳에서 윗대 어른들에 대한 정보와 족보 찾는 법 등을 배워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학기 중에는 학생들이 30여 명씩 단체로 와서 자신의 뿌리를 찾고, 또 족보 보는 법을 배우기도 한다. 최근에는 취업 면접에 대비하기 위한 취업 준비생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나이가 많은 방문객 중에는 서울, 대구 등 전국에서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등 외국에서 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족보자료실은 1977년 만들어진 민간단체 한국성씨연합회가 1983년 부산시의 도움으로 시민도서관 내에 공간을 마련해 지금까지 구입하거나 기증 받은 족보, 문집 등을 모으고 있는 곳이다.
연합회 이두수 총재는 “처음에 족보 200권 정도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40배가 넘는 자료들을 확보했고, 또 늘여 나가고 있다”면서 “자료가 풍성해지자 찾는 사람들도 최근 몇 년 사이에 배 이상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에 젊은 세대에게 다가서기 위한 연합회의 노력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젊은 세대를 위해 한글족보 1000여 권도 최근 확보했으며, 계속해서 그 양을 늘일 계획이다. 족보 읽기를 쉽게 가르쳐 주는 상근 직원도 항상 대기하고 있다.
인터넷을 즐기는 젊은 세대를 위해 최근 시민도서관 홈페이지 내 단순하게 만들어진 ‘사이버 족보 자료실’의 내용도 더욱 풍성하게 만들 방침이다. 이르면 가을부터 ‘족보 바로 보는 법’을 부산지역 전 학교를 직접 찾아 다니며 강의도 할 작정이다.
연합회의 처음 목표는 한국전쟁 당시 부산으로 급히 피난 오느라 족보를 잃어버리고 부산에 온 사람들의 가족사(史)를 찾아 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바쁜 생활 속에서 자신의 뿌리를 잊고 사는 학생,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이 총재는 “온갖 정보에 파묻혀 살면서도 정작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인식하지 못한 채 지내기 쉬운 현대에 자신의 역사(歷史), 조상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해 주기 바란다”면서 “젊은이들이 족보의 전통을 이어나갈 수 있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계속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