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조망과 군인, 논밖에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발전 소외지역이던 강원도 철원에 국내 유일의 '전자빔 클러스터'가 들어선다. 사실상 철원 최초의 '제조업'인 전자빔 산업은, 농산물의 살균에서 반도체와 타이어 성능 향상 등 활용 분야가 다양하다. 세계적으로 210조원대 시장규모가 예상되는 '10년 후 먹고살' 첨단산업의 전형이다. 현재 국내에선 일부 타이어·전선 등 제조업체가 공정과정에서 전자빔을 소규모로 사용할 뿐, 종합 전자빔 클러스터는 없는 상태다.

철원군이 주도해 만들고 있는 전자빔 클러스터가 들어서는 곳은, 서면 자등리의 47번 국도주변 3만4000㎡. 3개 핵심시설 중 행정과 연구를 담당하는 '베이스 Ⅱ' 건물이 와수 초등학교 성동분교 폐교 자리에 이미 들어섰다. '부대 앞 서행'이란 팻말이 대부분인 철원이지만 클러스터 입구에는 '경축 전자빔 종합이용센터 건설'이란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내년 여름쯤 완공된다.

연구를 지휘하고 있는 정기형 물리기술연구소장(69·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은 "2001년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잡초가 무성했다"고 말했다. 센터 총괄책임자 이강옥 박사(여·50) 역시 철원의 지역 특징을 묻자 "돼지고기 1500억원, 쇠고기 500억원, 닭고기 60억원어치, 그리고 쌀 5만1000�이 생산되는 농업목축업 지역"이라고 말했다.

최첨단이자 국내 유일의 전자빔 산업이 철원에 들어서게 된 것은 철원군의 노력과 정부의 규제 덕이다. 상수원 보호법 등 7개 법으로 규제를 받고 있는 강원도에선 오염유발 산업이 철저히 금지된 덕에 공해가 없는 최첨단 산업의 입주만 가능하다.

전자빔 종합이용센터는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다. 우선 철원의 대표산업인 농산물이 혜택을 받게 된다. 사과 등 과일의 표면에 전자빔을 쏘면 세균이 죽는다. 감자의 경우 싹이 더디게 나와 장기 저장이 가능해진다. 농약 없이 볍씨 소독을 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전자빔을 쏘인 식품의 학교급식을 FDA(식품의약청)가 승인했다.

▲ 전형적인 전방 농촌지역인 강원도 철원에 들어설 전자빔 종합이용센터 내부 전경.

현재 병원 수술기구는 ‘이오(EO)가스’로 소독한다. 그러나 이오가스는 발암물질로 판명 나 선진국에선 전자빔 소독이 일반화돼 있다. PVC 전선도 전자빔을 쏘이면 높은 온도에서도 불이 잘 붙지 않는다. 서울의 대형 재래시장에 전자빔을 쏘인 전선을 설치하면 ‘누전’으로 인한 화재를 줄일 수 있다.

센터는 2001년 서울에서 플라스마 관련 장비 30�트럭 43대분을 철원으로 가져오면서 모습을 드러냈고, 2004년부터 강원도와 철원군의 지원을 받으며 연구를 본격 추진했다. 올해 산업자원부의 2007년도 지역혁신산업 기반구축사업에 선정되면서 260억원의 자금이 확보돼 본궤도에 오르게 됐다.

센터 주변으로 의료기기 업체인 도우메디칼 등 매출 100억원 이상 기업 2개를 포함해 36개 기업이 이주할 예정이다. 도우메디칼 김건수 이사는 “선진국에서는 전자빔으로 소독한 수술용 기기 사용이 일반화돼 있다”며 “센터와 협력을 통해 2년 후에는 매출을 30억원 더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센터의 연구 중 관심을 모으는 것은 휘발유 대체연료 개발 사업. 현재 옥수수를 사용한 대체연료가 개발되고 있으나, 원가가 너무 비싸다는 것이 걸림돌이다. 이와 관련, 센터측은 강원도의 산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는 버려진 나무를 원료로 사용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 전자빔을 쏘인 폐목에 효소를 넣어 발효시켜 알코올을 탄생시키는 기술을 이미 특허출원한 상태다. 일본, 헝가리, 러시아 등이 연구소와 MOU를 체결해 각종 공동연구를 하고 있다.

이강옥 총괄책임자는 “미국과 러시아는 1920년대부터 전자빔 연구를 시작했고, 1997년 몬트리올 협정에 의해 선진국은 볍씨 등의 농약살균을 금지하고 있다”며 “21세기 수출환경을 감안할 때 전자빔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전자빔

전자빔 장치를 통해 전자를 가속하면 X선이 발생하게 된다. 이 X선을 물질에 쏘면 이온화, 광학적 반응 등이 일어나 살균, 개질(改質), 반도체 성능향상 등의 현상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과일 표면에 X선을 쏘이면 원자가 분리돼 나가며, 원자 분리로 빚어진 불안정한 현상을 과일 자체가 만회하는 작용을 하는데, 그 결과로써 살균 등의 효과를 볼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