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도 보고, 공부도 하고!'

여름방학을 맞아 모텔이 대학생 커플의 '피서지'로 애용되고 있다.

제헌절이자 샌드위치 휴일의 마지막날인 지난 화요일(17일) 오후 3시쯤 서울 종로구 관철동 A모텔은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일찌감치 '만원'이었다.

모텔 출입구는 몇분 간격으로 쉴새 없이 드나드는 '뚜벅이 커플'로 분주했다. 주차장에도 빈 자리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전화로 객실 상황을 문의했더니 직원은 "지금 오시면 한시간쯤 기다리셔야 될 것 같다"고 답했다. 물론 이 업소는 손님들이 기다릴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마련해뒀고, 손님들은 로비에서 대기 번호표를 손에 쥔 채 '기꺼이 기다릴 수 있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온다.

이같은 상황은 작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약 50m쯤 떨어진 B모텔도 마찬가지였다. 20대 초반의 젊은 남녀들이 잇따라 모텔 입구로 들어섰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발걸음을 머뭇거리는 연인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 모텔 역시 전화를 걸자 "지금은 빈 객실이 없다"고 말했다. 오후 10시쯤 다시 B호텔에 전화를 걸었더니 "객실이 5개 밖에 안 남았다. 10분 내로 오지 않으면 숙박이 어렵다"는 직원의 답이 돌아왔다.

주말이나 휴일 대낮 모텔의 '문전성시'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특히 7~8월 여름방학엔 '준 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C대학 4학년 이모씨(남ㆍ25)는 "여자친구랑 둘이서 영화 보고 커피 마실 정도의 비용이면 모텔을 이용할 수 있으니 굳이 다른 데이트장소를 찾을 필요가 없다"며 가격 대비 경쟁력을 언급했다.

▶여름방학, 모텔은 알뜰 피서지?

요즘 대학생들에겐 '배움을 쉰다'는 방학(放學)이 방학이 아니다. 공부(계절학기), 돈벌이(아르바이트)에다 취업준비(토익/토플, 컴퓨터학원)까지 해야 하는 시기다. 게다가 주머니마저 가벼우니 마음놓고 쉴 시간적-공간적 여유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젊은 연인들에겐 모텔만큼 좋은 '놀이터'가 없다. 깨끗한 객실에 최신형 PDP-TV, DVD플레이어, 컴퓨터와 초고속인터넷, 콘솔게임기, 커피메이커 등 한나절을 거뜬히 지낼만한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 빵빵한 에어컨, 월풀욕조 덕분에 한여름 무더위를 피할 수 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여관하면 떠오르는 '싸구려 이미지'를 탈피해 젊은 세대의 눈높이에 맞췄고, 여성취향 객실 및 비품까지 갖춰 여성 고객들의 '자발적인 모텔행'을 이끌어내고 있다.

모텔 정보 포털사이트 '모텔가이드'(www.mtguide.com)의 관계자는 "서울 등 수도권과 전국 주요도시 신설 모텔의 숙박권, 대실권 공동구매를 진행하면 20대 초반 대학생들의 참여율이 매우 높다"며 "특히 공동구매에 참여하는 여성고객 비율이 40%에 이르고 있다"고 밝혔다. 남자친구의 손에 이끌려 마지못해 모텔까지 따라갔다는 얘기는 틀림없는 '과거형'이다.

▶경영 마인드(모텔) VS 경제적 소비(고객)

모텔은 이미 수십년째 판매되고 있는 '상품'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공급자와 소비자의 마인드 모두 예전과는 비교하기 힘들만큼 달라졌다. 특히 인터넷과 IT기술의 발달이 모텔 '문턱'을 낮추는데 큰 역할을 했다. 마우스를 몇번만 클릭하면 객실 사진과 비품, 가격과 이용시간, 각종 할인 및 이벤트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찾아볼 수 있다. 서울지역만 해도 강북이든, 강남이든 입맛대로 골라갈 수 있다. 앞서 다녀온 사람이 남긴 상세한 이용후기 덕분에 '초행길'에도 손해를 볼 일이 없다. 소비자의 정보력이 강해지면서 모텔측은 허리를 낮출 수밖에 없다. 대실시간을 늘려주거나 이용요금을 할인해주는 등 고객만족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모텔가이드' 관계자는 "신축 모텔의 숙박권-대실권 공동구매를 진행하면 대개 하루를 넘기기 전에 마감된다. 기존 공동구매 참여자들의 재구매율이 60%가 넘는다. 정상가격의 최대 50%까지 할인하는 경우도 있지만 모텔 입장에선 절대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