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속도로 후진하며 360도 회전하는 것으로 유명하던 ‘아토믹 코스타’의 승강장은 ‘점검중’이라는 표지판이 달린 채 굳게 닫혀 있었고, 하늘색 레일은 군데군데 녹이 슬어있었다. ‘젯트 코스타’는 아예 레일이 뽑혔고 승강장에는 먼지가 끼어 있었다. 알록달록 색깔의 시계탑의 바늘은 12시에 멈춰 있었다.
서울 강북구 번동 드림랜드. 1987년 문을 연 뒤 한때 능동 어린이대공원이나 과천 서울랜드와 어깨를 겨루던 서울의 대표 놀이공원이었지만, 지금은 입장권을 끊으면 “운행중지 중인 시설이 있으니 참고하라”는 안내를 받아야 할 정도로 쇠락했다. 주중에는 수영장 입장객을 빼면 거의 인적이 끊긴다. 이에 따라 10만평(놀이동산 4만평+주변 녹지 6만평)에 이르는 드림랜드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주민들 “병원이나 시민공원으로 만들어야”
“꿈의 꿈의 동산 드림랜드~”로 시작하는 로고송으로 80년대 후반 공중파 TV의 어린이프로 광고시간을 꽉 잡기도 했던 드림랜드. 하지만 90년대 들어서는 롯데월드와 에버랜드 등 막강한 자본력을 통해 첨단 놀이시설과 화려한 퍼레이드로 무장한 대기업 계열 테마파크 틈바구니에서 경쟁력을 잃어갔다. 지하철역과 떨어진 것도 약점으로 작용했다.
공원은 점차 쇠락의 길을 걸었지만, 드림랜드는 토지 소유주와 운영업체가 달라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지난 2000년 말 토지 소유주 안동김씨 동강공파 종회와 운영업체인 ㈜서울드림랜드 간의 임대 계약이 만료됐지만, 수익성 악화로 양측 간 갈등이 깊어져 공원은 방치돼갔다. 놀이기구는 드림랜드측이 설치했다.
드림랜드를 찾는 손님들이 줄어들면서 인근의 강북구 주민들은 이곳을 병원이나 시민공원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규식 의원(중도통합민주당·강북 을)이 지난달 강북구민 1215명을 대상으로 한 전화 설문조사 결과, 차후 활용방안으로 의료시설(30.8%)이 제일 많았고, 시민공원(24.6%), 학교(16.6%), 놀이시설(13.2%) 순이었다.
강북구는 놀이동산 자리에 주민편의 시설을 들이고 싶어한다. 김현풍(金顯豊) 강북구청장은 지난해 말 오세훈(吳世勳) 서울시장에게 민자를 유치해 개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대형 병원과 노인 요양시설 등 종합 의료단지를 조성하거나, 운동장 놀이시설·공연장·백화점·영화관·공항터미널 등을 두루 갖춘 복합시설로 꾸미는 방안이다. 어떤 식으로 개발되든 서울시가 현재 근린공원용지인 이 땅을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풀어줘야 가능하다. 강북구는 공원용지를 해제하는 대신 수유5동 일대에 공원 대체부지를 마련하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공원조성시 재원마련이 관건
월드컵 공원이나 서울숲 같은 시민공원으로 가꿔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서울 동북부에는 북한산을 빼면 가족끼리 산책할 만한 공원 하나 제대로 없는 만큼 녹지 공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서울시가 토지를 매입해 시민공원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다. 그러나 서울시 박인규 공원과장은 “별도의 시설을 들이는 대신 공원으로 활용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다”면서도, “하지만 재정 형편상 시가 나서서 공원으로 가꾸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오는 18일 오후 2시에는 강북문화정보센터에서 드림랜드의 시민공원 활용 방안을 집중 논의하는 토론회가 열린다.
드림랜드 주변 주민들은 “한때 지역 명소였던 곳이 동네의 흉물로 변해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어떻게든 주민들을 위한 곳으로 재단장됐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