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민주주의의 원형(原型)은 해적선에서 찾을 수 있다.”
17~18세기 대서양·카리브해·인도양에서 활개치던 해적들에 대해 이런 ‘도발적인’ 재평가 작업이 활발하다. 최근 미국에서 발표된 관련 논문과 서적에서 해적은 “영국과 미국보다 앞서 견제와 균형의 원칙(권력분립), 민주적 법체계를 도입한 집단”으로 묘사된다고 미 시사주간지 뉴요커 최신호가 보도했다.
◆불평등 사회에 항거
해적은 불평등한 계급사회를 뛰쳐나온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형성한 집단이다. 영국 해군의 엄격한 위계질서를 못 견딘 탈영병, 선장의 독선적 통제 방식에 맞선 상선(商船) 선원, 탈출한 노예와 농민 등이 구성원이다. 신분·인종·종교가 모두 제각각이었다는 점에서, 혈족 중심의 마피아 같은 범죄 조직과도 다르다.
해적들이 바하마 등 카리브해 섬들을 중심으로 세운 공동체는 민주·평등 이념을 토대로 많은 동조자들을 끌어 모았다. 이런 점에서 해적 공동체는 일종의 ‘공화국’으로 볼 수 있다고 언론인 겸 작가인 콜린 우더드(Woodard)는 설명했다.
◆해적선, 민주주의의 요람
해적선은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꽃피운 공간이다. 해적들 자신이 왕·함장·노예 주인 등 독재권력의 폐해를 겪었기 때문에, 선장(captain)의 권력이 커지는 것을 막았다. 선장은 전투 중에만 전권(全權)을 행사했고, 평상시엔 2인자인 조타수가 식량 배급·훈련·약탈품 분배·분쟁해결 등 대부분의 의사결정권을 쥐었다.
해적선 안은 ‘법치(法治)’가 지배했다. 웨스트버지니아대 경제학과의 피터 리슨(Leeson) 교수가 지난달 발표한 논문 ‘해적 집단의 법과 경제학’에 따르면, 해적선엔 ▲선원들의 권리와 의무 ▲분쟁발생 시 행동수칙 ▲무공(武功)에 대한 포상 ▲규칙 위반에 대한 처벌 등을 명문화한 ‘성문법’이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