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골퍼 최경주는 필드에 세 개의 태극기를 갖고 다닌다. 골프화 오른쪽 뒤꿈치에 조그만 태극기가 붙어 있고, 골프 백 한가운데에도 태극기가 있다. 또 ‘CHOI’라고 새겨진 캐디의 겉옷 앞에서도 태극기를 발견할 수 있다. 엊그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주최하는 AT&T 내셔널 대회에서 최경주를 만났을 때도 태극기는 어김없이 그를 따라다녔다.
몇 해 전 그에게 “태극기를 왜 붙이고 다니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텃세 심한 PGA 대회에서 내 정체성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무명 시절 그가 유명 선수와 한 조로 경기할 때면, 그들은 온갖 방법으로 사람 신경을 건드렸다고 한다. 경기 내내 한마디 말도 안 붙이는 ‘왕따’ 유형에서부터 “그것밖에 못 치느냐”고 야단치기까지 하며 별의별 방법으로 사람을 주눅 들게 했다는 것이다. 실제, 그는 AT&T 대회 3라운드와 4라운드에서 한 조를 이룬 스튜어트 애플비(Appleby)와 라운드를 끝낼 때까지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여기에 갤러리가 가세할 때도 있다. 2004년 스위스 오메가 대회에서 그를 취재한 적이 있다. 당시 스페인 출신의 골프 신동(神童) 세르지오 가르시아(Garcia)와 한 조를 이뤄 경기했는데, 스페인에서 올라온 아줌마 부대가 가르시아가 퍼팅할 때는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내지 못하게 분위기를 잡더니, 최경주가 퍼팅할 때만 되면 부스럭거리면서 훼방을 놓는 것이었다. 보다 못한 기자는 ‘쉿’ ‘쉿’ 하면서 분위기를 잡았고, 스페인 아줌마들과 말싸움까지 벌이면서 최경주를 응원했었다. 이처럼 선수들뿐 아니라 갤러리까지 텃세를 부리는 통에 그는 태극기를 보며 마음을 달래곤 했다는 것이다.
그의 국가관을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는 또 있다. 오메가 대회 당시 파3홀에서 공이 그린 바로 옆 러프에 빠졌다. 세컨샷을 칩샷 한다는 게 그만 생크가 나고 말았다. 공은 미사일처럼 ‘쌩’ 하고 그린을 향해 날아갔다. 기자를 포함한 몇몇 한국인 응원단은 순간 아차 싶었다. 파 세이브는커녕 더블 보기를 할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웬 조화인지 공은 핀을 정통으로 맞고 홀컵으로 들어가 버렸다. 버디였다. 경기가 끝난 후 “어떻게 된 거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나라 망신시킬 뻔했지요! 휴~.”
기자는 이번 AT&T 대회 내내 기분이 좋았다. 출입증에 새겨진 기자의 이름을 본 수많은 갤러리들이 “최경주의 가족이냐”고 물었다. “뭐, 다 같은 패밀리”라며 어깨를 으쓱거렸더니, 너도나도 축하 인사를 건넸다. 어떤 이는 “한국 출신 맞느냐”면서 “당신이 최경주 아들이냐”고 물었다. 약간은 어이없었지만(기자가 최경주보다 나이가 더 많다), 대회 내내 최경주와 같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에 힘든 줄도 모르고 18홀을 돌았다.
신이 난 것은 골프장을 찾은 한국 동포들도 마찬가지였다. 곳곳에서 “최경주 파이팅” “대~한민국, 짝짝짝” 하는 소리가 들렸다. 버디와 보기가 다 그게 그건 줄 아는 할머니들, 아빠 손에 이끌려 필드에 나온 꼬마들, 최경주 샷 하나하나를 꼼꼼히 기록하는 골프 마니아들…. 젊은 한인 동포 2세들도 네이티브(native) 영어로 목이 터져라 최경주를 응원했다. 모두들 최경주를 통해 대리 만족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8일 마지막 라운드에서 그가 우승하자 주최측은 대형 태극기를 시상식 주변에 갖다 놓았다. 네 번째 태극기가 메릴랜드 하늘에 펄럭이는 순간, 자리를 뜨지 않고 시상식을 지켜본 수많은 한인 동포들은 저며 오는 가슴 뭉클함을 감당하지 못하고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스포츠는 국경을 초월한다고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 어떤 것보다 국민을 하나 되게 하는 힘이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