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 350명이 유엔의 레바논평화유지군(UNFIL)으로 주둔하게 될 레바논 남부 부르즈 앗-쉬밀리 지역은 주변에 높이 2.5~3m의 오렌지 나무들이 들어선, 평지에서 505m 정도 솟은 구릉지에 위치해 있었다.
60여명의 선발대 도착을 하루 앞둔 4일 이곳에선 주둔지 공사의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었다. 진지 입구에는 폭탄차량의 공격에 대비해 폭 30m·높이 10m 정도의 콘크리트 방호벽이 구축됐고, 주변은 ‘헤스코(Hesco)’라 불리는 모래 방벽(防壁)이 에워쌌다. 인근 이탈리아 군 소속 장갑차량과 8명의 병력이 방호벽 위에서 접근하는 기자에게 총을 겨눴다.
주둔지 내부에는 이미 수십개의 베이지색 컨테이너 막사들이 들어섰다. 현지 근로자들 20여 명이 굴착기와 불도저를 동원해 배수로를 닦고 있었다. 그러나 현장의 한국군 관계자는 “지난 5월 동쪽으로 30㎞ 떨어진 곳에서 UNFIL 병사를 살해한 테러가 발생해 긴장을 늦출 수 없다”며 기자에게 주둔지에서 나갈 것을 요구했다.
한국군 주둔지에서 500m쯤 떨어진 인구 5000여명의 농촌마을 타이르―데바. 마을 입구의 높은 깃대엔 작년 여름 이스라엘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레바논 남부의 이슬람 시아파 무장조직 헤즈볼라(신의 당)를 상징하는, 초록색 기관총이 그려진 노란 깃발이 나부꼈다. 이스라엘 국경과 불과 25㎞ 떨어진 이곳 주민들은 사실상 다 헤즈볼라 대원이거나 지지세력이다. 마을 중심의 한 노천 카페에서 만난 이곳의 헤즈볼라 간부 하산 모그니에(22)는 “한국군의 안전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인근의 제법 큰 항구 도시 티레(인구 11만명)는 고대 로마의 유적이 산재한 곳이지만, 작년 이스라엘군의 폭격 흔적이 건물 곳곳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3000년 전 티레의 왕은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성전(聖殿) 건축을 위해 레바논의 백향목을 기꺼이 보내며 ‘우정’을 표했었다. 그러나 지금 티레인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이날 오전 잡은 물고기를 손질하던 어부 레이몬드 아사프(44)는 “작년엔 전쟁 탓에 60일 동안 바다에 못 나갔다”며, “전쟁이라면 지긋지긋하다. 한국군이든 프랑스군이든 평화만 지켜준다면 환영”이라고 말했다.
타이르-데바의 수니파 무슬림인 아마드 쉬케이프(Shkeif·22)는 “이라크와 달리 레바논에선 이슬람 수니·시아파 사이에 증오가 없다”며 “한국군의 안전은 평화를 바라는 레바논인들에게도 더없이 중요한 관심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