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형주·고등과학원 교수 ·2014 국제수학자대회 유치위원장

최근 국제수학연맹이 한국의 수학 국가등급을 2등급에서 4등급으로 상향하며 한국 수학자들을 기쁨에 들뜨게 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전체 5등급 중 차(次)상위 등급 국가가 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우리 수학계는 세계 수학자들의 축제인 2014년 국제수학자대회(ICM) 유치에 나섰다. 그리고 그때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을 한국인 수학자가 수상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ICM은 수학분야의 최대 학술대회이자 수학자들의 축제이다. 이를 주최하는 국제수학연맹은 68개국 수학회들의 모임인데, 회원국을 5개의 국가등급으로 나누어 등급만큼의 투표권을 부여한다. 이 방식은 한 국가의 수학 등급이 필즈상 수상자를 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한다.

한국은 1981년 가입 후 1993년에 2등급이 되었다. 대한수학회는 2006년 9월 12일에 4등급으로의 상향요청서를 국제수학연맹에 보냈다. 한 번에 두 등급이 상향된 전례가 없어서, 한국의 요청은 상당한 논란거리가 되었다. 연맹의 10인 집행위에서 찬반이 대립하며 결정이 늦어졌다.

요청서는 한국 수학연구의 양적, 질적 성장의 증빙을 목표로 삼았다. 2006년 수학분야 논문 수로 한국 수학은 세계 12위이나, 질 부분은 증빙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높은 수준의 정밀조사를 받으면서 한국 수학 수준에 대한 국제적 이해도가 높아졌다. 회원국 우편투표 과정에서 일본 수학회장단의 한 분은 “한국은 최상위 등급인 5등급도 가능한 게 아닌가”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투표결과도 압도적 찬성이었다. 필즈상 선정위원회 구성을 포함한 국제수학연맹의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한국이 주도적으로 참여할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참석자 4000명 규모인 ICM에서 초청강연이나 기조강연을 하는 것은 수학자에게 큰 영광으로 간주된다. 한국은 그동안 초청강연자가 없었으나, 작년 마드리드 대회에서 세 명이 초청되는 기쁨도 맛보았다. ICM 초청강연자 배출과 국제수학연맹 등급상향이라는 낭보를 한국 수학의 비상(飛翔)으로 연결하기 위해, 대한수학회는 ICM 유치를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시기상조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과학이 늘 그렇듯 큰 성취는 모험에서 온다. 1994년 주최국인 스위스나 2010년 유치국인 인도는 수학적 전통이 깊고 불세출의 수학자들을 배출했지만, 논문 수로는 이미 한국이 추월한 상태다. 우리도 할 만한 것이다.

매년 스톡홀름에서 수여되는 노벨상과 달리, 수학분야 최고의 상인 필즈상은 4년마다 열리며 ICM 개막식에서 개최국 국가원수가 수여한다. 때문에 시상식은 그 나라 국민의 기초과학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훌륭한 행사가 된다.

수학은 국가경쟁력에 크게 기여한다. 국제수학연맹의 국가등급 분포를 보면 수학과 국력이 함께 가는 것이 더 분명해진다. 최상위 5등급엔 서방선진국 G8에 이스라엘과 중국을 더해 10개국이 있다.

수학의 힘은 전쟁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유럽과 아시아에서 동시에 전쟁을 수행했다. 당연히 병참문제가 골칫거리가 되었다. 이때, 미국수학자들이 선형계획법을 개발하여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이는 나중에 선형대수가 되었고, 고등학생들은 수학시간에 선형대수의 하나인 행렬을 배우고 있다.

ICM 유치에는 정부와 국민의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예산 등의 물적 지원뿐만 아니라 기초과학의 성장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중요하다. 한국수학자들이 최근 갖게 된 자신감을 정부와 사회가 뒷받침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2002년 베이징 대회 첫 날에 장쩌민 주석은 2시간 반 동안의 개막식 내내 자리를 지킨 뒤 필즈상을 수여하고 만찬을 주재했다. 2006년 마드리드 대회에서 스페인 국왕은 오전 세션의 좌장을 직접 맡으며 자리를 지켰고 필즈상을 수여했다. 두 명의 필즈상 수상자를 배출했던 일본은 1990년 교토 국제수학자대회에서 모리가 필즈상을 받으면서 일본 열도를 열광시켰다. 2014년 우리 대통령이 한국인 수학자에게 필즈상을 수여하는 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