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스타일’이란 이름의 소파 세트.

2005년 4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가구 박람회장.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한 가구 브랜드 전시장 앞에 멈춰서더니 그룹 경영진에게 말문을 열었다. “가구 디자인은 건설과 전자, 패션의류 디자인과 흐름을 같이해야 합니다.” 이 회장은 “가구는 소비자의 요구를 가장 빠르게 반영하는 제품인 만큼 어떻게 유럽의 고급 문화를 디자인에 반영하는지, 세계 프리미엄 가구업체의 최첨단 흐름을 경험해보라”고 했다. 이곳은 바로 이탈리아의 럭셔리 가구 브랜드 몰테니(Molteni) 매장이었다.

대체 어떤 디자인이기에 이 회장이 디자인 혁명을 주문하도록 만들었을까. 이탈리아의 럭셔리 가구 브랜드 몰테니는 보석 브랜드 카르티에의 파리 본점을 비롯한 전 세계의 부티크, 포시즌과 힐튼·메리어트·리츠칼튼 같은 유명 호텔의 인테리어를 맡았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있는 오페라극장 ‘라 페니체(La fenice)’와 ‘디즈니 크루즈’ 같은 고급 선박의 인테리어 작업에도 참여했다. 몰테니 그룹의 ‘다다(DaDa)’라는 주방용 가구 라인은 모나코의 몬테카를로 지역의 고급 주거단지와 특약을 맺고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국내에도 몰테니의 침대와 장롱, 소파를 쓰고 있는 재계 인사가 한두 명이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적인 이 ‘가구의 럭셔리’는 “전 세계 2%만이 우리의 고객”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에게 많이 알리고 파는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가격대 낮은 인테리어 소품은 아예 취급하지도 않는다. 고소득 상류층을 겨냥한 고가 전략은 지금도 흔들림 없이 고수되고 있다. 장롱(10자 기준) 한 개가 2000만원을 넘고 침대는 매트리스를 제외하고도 1000만원이 훌쩍 넘는다. 2005년 몰테니가 국내에 상륙할 때 “부엌가구 한 세트가 1억5000만원”이라고 하자 “대체 싱크대에 보석이라도 박았냐”는 말도 나왔다. 대체 어떤 디자인에 어떤 재질을 썼는지 지난 6월 5일 서울 논현동에 있는 몰테니&C 쇼룸을 찾아가봤다. 삼성미술관 리움의 디자인을 맡았던 장 누벨이 디자인한 ‘그라듀아떼(Graduate)’라는 거실 선반이 벽에 걸려있었다. 얇디얇은 선반들은 메탈로 된 훅(hook)을 사용해 수직으로 연결했다. 선반 전체가 버틸 수 있는 무게는  360 kg이나 된다고 한다. 몰테니의 베스트셀러인 ‘다이아몬드 테이블’은 8㎜밖에 안되는 얇은 유리 상판에 테이블 다리 부분이 다이아몬드 커팅된 모양을 하고 있다. 겉은 은색 스틸이지만 내부 프레임은 철제로 돼 있다.

가구의 디자인이 평범하고 견고한 듯하면서도 춤을 춘다. 하이 코브(Hi-Cove)라는 회전의자는 물결이 합쳐지는 형상을 모티브로 삼았다. 장갑을 씌운 것 같다는 뜻의 미니멀 의자 ‘글로브’는 오렌지 브라운, 노랑, 연한 자줏빛이 유쾌했다.

2층 매장으로 올라가니 옆 모양이 종이 클립처럼 생긴 ‘클립 침대’가 있었다. 머리 부분의 각도를 조절할 수 있는 것으로 프레임만 1300만원이다. 손잡이 하나 없이 여닫이가 슬라이딩 도어로 돼 있는 장롱은 문 한 짝이 보통 제품의 두세 배쯤 될 정도로 웅장하다. 예술이 그러하듯이 디자인도 상상이다.

몰테니의 베스트셀러 ‘다이아몬드 테이블’

1930년대 초 이탈리아 북부에서 문을 연 몰테니는 1950년대 들어서 기계화를 도입했다. 1970년 들어서면서 주거용 가구 브랜드 몰테니&C 외에 사무용 가구 브랜드 유니포(Unifor), 주방용 가구 브랜드 다다(DaDa) 등을 만들었다. 몰테니 그룹은 원자재 구입에서부터 완제품 생산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정을 직접 관리하는 몇 개 안 되는 가구 업체 중 하나다. 2005년 말 한샘 관련사인 넥서스와 독점 판매계약을 맺고 한국에 상륙했다.

몰테니 디자인의 핵심은 장식적 요소를 벗어던진 모던한 미니멀리즘이다. 디자인이 생명인 가구 브랜드가 늘 '최소의 디자인'을 강조한다. 기하학적이고 간결한 디자인은 시원한 공간감을 준다. 가구 자체가 두드러져 보이지 않고, 가구를 통해 공간을 돋보이게 한다는 말이 실감난다.

이런 몰테니 디자인이 2007년 들어선 보다 더 단순해졌다. 손잡이나 작동 버튼 같은 것은 몽땅 안으로 숨어버렸다. 표시돼 있는 부분을 살짝 누르면 거대한 서랍장 문이 열리는 식이다. TV를 놓는 수납장도 그렇고 부엌용 세트도 그렇다.

몰테니 제품 디자인엔 장 누벨과 마리오 보타, 루카 메다, 노먼 포스터 같은 세계적 디자이너 및 건축가들이 참여한다. 회사에 속하지 않은 외부 디자이너라 더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제품 한 개가 팔릴 때마다 몇 %의 인센티브가 디자이너에게 돌아가는 방식도 쓴다고 한다. 디자인 면에서 독보적 위치를 갖는 몰테니는 실용성에 있어서도 경쟁력을 갖고 있다. 몰테니 그룹의 카를로 몰테니 회장은 지난해 한국을 찾았을 때 “가구는 감상만 하면 되는 미술품이 아니라 실용성이 떨어지면 아무도 사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선지 제품을 자세히 살펴보면 곳곳에 효율성을 강조한 걸 알게 된다. 대표적 모듈 시스템인 ‘505 가구’는 문, 서랍 등을 사용자 편의에 따라 자유자재로 배치할 수 있다. ‘리베르시(Reversi) 데이 베드(Day Bed)’란 제품은 긴 안락의자인 동시에 침대로도 쓸 수 있다. 등받이 부분은 세 단계로 각도를 조절할 수 있고 헤드 부분엔 작은 소품을 수납하는 서랍이 내장돼 있다. 2007년 밀라노 가구박람회의 화제작이었던 장 누벨 디자인의 스킨이란 소파도 편안함과 안락함을 특히 고려해 만들었다고 한다.

몰테니 그룹의 카를로 몰테니 회장은 좋은 가구의 3대 요소를 “나무의 질, 혁신적 기술, 좋은 디자인”이라고 했다. 이탈리아 밀라노 외곽 귀사노 지역에 있는 몰테니 본사에는 40년 동안 나무 고르는 일만 하거나, 재봉틀로 나무 조각을 직접 이어붙이는 작업만 하는 직원이 수십 명씩 있다고 한다.

몰테니 그룹의 주거용 가구는 현재 세계 37개국에서 판매되고 있고 주방용 가구 ‘다다’는 10개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