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도에서 최대 화제 중 하나는 이달 초 발생했던 라자스탄주(州)의 폭동이다. 폭동이 일어난 곳이 타지마할과 쌍벽을 이루는 관광 명소인 자이푸르(Jaipur) 부근이란 점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인도 사회의 ‘아킬레스건(腱)’으로 불리는 카스트(caste·신분제도)를 둘러싼 폭동이란 점이 흥미롭다.

이번 폭동으로 30여명이 숨졌는데, 그 이유를 들으면 더욱 기가 막힌다. 신분을 높여달라는 게 아니라, 낮춰달라는 게 폭동을 일으킨 주민들의 요구사항이다. 라자스탄에 사는 구자르(Gujjar) 부족 사람들은 바이샤(상인)와 수드라(농민) 중간쯤에 걸쳐 있는 기타소외계급(OBC·Other Backward Classes)에 해당한다. 〈표 참조〉 이들이 자신들을 '제5계급'으로 불리는 최하층인 지정부족(ST·Scheduled Tribe)으로 신분을 격하시켜달라며 폭동을 일으켰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약자보호정책(Affirmative action) 때문이다. 카스트 제도가 실존하는 인도에서는 신분이 낮은 사람들을 배려하는 갖가지 정책들이 있다. 이 중 인구의 약 30% 안팎인 지정부족(ST)이나 지정카스트(SC·Scheduled Caste)를 위해서는 공무원이나 대학 신입생 선발 때 전체 정원의 일정비율(15~25%)을 이들에게 의무적으로 할당하고 있다.

따라서 구자르 부족민들은 OBC보다는 지정부족(ST)에 편입되면 더 많은 혜택을 볼 수 있게 된다. 우여곡절을 끝에 결국 라자스탄주에선 이들의 요구에 굴복, 지정부족으로 지정해주는 방향으로 사태를 수습하고 있다.

‘인간은 모두 불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원칙으로 움직이는 기이한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지금부터 하나씩 확인해보자.

◆학교에서 배운 카스트와 인도에서 통용되는 카스트는 다르다?

흔히 카스트라고 하면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의 4가지 계급으로만 이해한다. 하지만, 실제 인도생활에서는 바르나(Varna)라고 불리는 이들 계급보다는 3000여가지가 넘도록 세분화된 자티(Jati)가 더 많이 사용된다. 색깔이란 뜻을 가진 바르나는 큰 틀의 신분 계층을 의미하고, 출신을 의미하는 자티는 자역별, 직업별로 세분화된 구체적인 개념의 신분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자티는 구자라티, 샤르마, 굽타 등의 사람들의 성(姓)이나 출신 지역의 이름을 딴 것으로 표현된다. 물론 각 자티는 고유의 바르나를 갖게 된다.

좀 더 자세히 들어가보자. 카스트의 기원은 인종(人種) 분류다. 색깔이란 뜻에서 짐작되겠지만 바르나는 백인계열의 아리안들과 비(非) 아리안을 구분하는 데서 시작된 것이다. 지금부터 2000~4000년 전에 아리안들이 인도 북부 지역을 침입해왔다. 당시 북인도에는 아프리카 계통의 드라비다인들이 살고 있었다. 백인인 아리안들이 흑인인 드라비다인과 섞이는 것을 막기 위해 바르나를 만들었다는 분석이 가장 유력하다. 드라비다인들은 이후 지금의 인도 남부로 밀려났다.

북부 지역을 장악해 살게 된 아리안끼리도 직업에 따라 구분이 이뤄져,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의 3가지로 분화됐다. 따라서 상위 카스트라면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3가지이며, 하위 카스트는 수드라다.

그렇다면 자티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시간이 흐를수록 도시화가 이뤄지고, 지역별로 특성이 점점 뚜렷해지고, 직업도 점점 세분화되면서 바르나 내부에서 분화가 일어났다. 현재는 3000여 가지에 이른다. 인도 시골을 가면 대부분 바르나 대신 자티를 따진다. 인도인들의 이름만 들어도 카스트를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은 특정 자티에서는 같은 성을 사용하므로, 추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표 참조

◆왜 인도인들은 카스트에 순응하나

힌두교의 경전인 ‘리그 베다’에는 “브라만은 푸루샤(인류의 원 조상격인 인물)의 입에서, 크샤트리아는 팔에서, 바이샤는 허벅지에서, 수드라는 발에서 나왔다”는 대목이 나온다. 카스트의 근거로 삼는 부분이다. 그래서 브라만은 종교 제사장이나 지주(地主), 크샤트리아는 정치가나 군인, 바이샤는 상인, 수드라는 농민 등으로 구분됐다고 한다.

인도 사람인 부처님이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는 제왕절개로 태어났다는 영웅신화적인 묘사가 아니라 카스트 신분상 크샤트리아(팔에서 탄생)인 부처님을 인도식(式) 은유법으로 표현했다는 얘기도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카스트는 4000년 이상 끈질긴 생명력을 가질까. 이를 알려면 인도인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힌두교의 두 가지 개념을 이해하면 좋다.

‘카르마(Karma·業)’와 ‘다르마(Darma·德)’라는 것이다. 사람은 전생(前生)의 카르마로 현생(現生)에 태어나는데, 현생에선 다르마를 다 하면 다음 생애에 행복하게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세에 불만을 갖고 폭발시키거나 현세에서 신분 이동을 노리기보다 그저 주어진 카스트에 따른 다르마를 열심히 하면 다음 생애에 좋은 환생을 기약할 수 있다는 걸 더 믿고 따른다. 이런 특성 때문에 이방인에 비친 인도인들은 얼핏 ‘운명론자’ ‘체제순응론자’로 평가된다.

◆카스트를 둘러싼 인도인의 이중성

인도인들은 자신들이 외국인에게 인종 차별을 당하면 무척이나 강하게 반발한다. 그러나 자신들의 내부적인 인종 차별인 카스트에 대해선 문화라고 주장한다. 백인 우월주의 사회였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도인들이 ‘쿨리(苦力)’라고 불리며 인종 차별을 당했다고 반항한 마하트마 간디도 사실은 카스트로는 바이샤이며, 스스로 카스트 자체의 폐지를 주장한 적은 없다. 더욱이 인도 헌법에서는 “인간은 평등하다”며 공식적으로 카스트를 부정한다. 인도인들은 비(非)헌법적, 반(反) 헌법적 제도인 카스트가 바로 인도사회의 근간을 지켜주는 핵심 원리이자 문화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카스트는 바꿀 수 있나

카스트도 바꿀 수 있다. 특히 브라만과 크샤트리아, 바이샤 간에는 오래 전부터 약간씩의 이동이 있었다. 그러나 수드라와 상층 카스트간의 이동은 거의 없다. 최근엔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카스트를 뛰어넘는 물질적 파워가 득세를 하지만 그렇다고 수드라가 브라만이 되는 식의 이동은 불가능하다. 이번 라자스탄의 폭동처럼 최근엔 특정 자티가 뭉쳐 최하층으로 내려가 정부의 지원금을 요구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다.

외국인이 카스트를 얻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힌두교와 카스트는 힌두인이 아니면 믿을 수도, 특정 계급인이 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힌두교와 카스트를 제도라기보다 문화라고 말하는지 모른다. 이방인에게 신종(新種) 카스트를 부여할 수 있다고 하지만, 정통적인 의미의 카스트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아웃카스트(Outcaste)라고 지칭한다.

◆'지정카스트니', '기타소외계층' 등은 왜 나왔나

'지정카스트'나 '기타소외계층'이라는 말은 헌법에서 부정하는 카스트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이율배반에서 생겼다. '불가촉(不可觸) 천민'이란 말을 쓰지 못하니까 지정 카스트(SC)라고 해서 교육이나 취업에 있어 배려를 해준다. '지정 부족' 역시 마찬가지다. 산속에 사는 토종 부족들을 배려하는 것이다. 여기엔 물론 민주주의를 채택한 인도의 정치 상황도 고려됐다. 지정부족과 지정카스트는 전체 인구의 30% 안팎이다.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기타소외계층(OBC)' 역시 마찬가지다. 여러 카스트간 결혼으로 생겨난 신흥 계층이지만 여기엔 바이샤, 수드라, 지정카스트 등이 다양하게 분포한다. 이들은 지정부족이나 지정카스트가 아닌데도, 생활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에 각 주 정부가 이들을 보호하려고 조사를 통해 선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중앙정부차원의 일정한 기준이 없이 그때 상황에 따라 결정된다. 이번 라자스탄 폭동도 이런 모호함 때문에 "지정부족으로 해달라", "그렇게 해주면 안 된다"는 등의 논란이 생겼던 것이다. OBC는 이런 의미에서 진정한 카스트라고 말할 수는 없다.

◆카스트간 결혼은 가능한가

인도에선 국제결혼보다 힘들다. 최근엔 카스트간 결혼(Inter-caste marriage)이 뭄바이, 뱅갈루루 등 대도시에서는 일부 일어나고 있다. 특히 신흥 중산층을 중심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인구의 대부분이 거주하는 시골에선 불가능에 가깝다. 카스트가 유지되는 데는 결혼이 큰 역할을 한다. 인도에선 결혼을 통해 부(富)가 세습된다. 신부는 천문학적인 지참금을 준비하고, 신랑도 이때 부모로부터 재산을 물려 받는다. 그런데 카스트간 결혼을 할 경우 부모들은 잔인할 정도로 자식에게 재산을 주지 않는다. 인도에선 자수성가란 게 지금까지는 아주 어려웠다. 그래서 대부분 결혼만은 부모의 뜻에 따랐다. 그러나 서서히 무너질 조짐도 보인다.

힌두인들에게 카스트를 포기하라는 것은 마치 한국인에게 족보를 버리라는 것과 같은 수준의 얘기다. 그만큼 당분간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급속한 경제성장은 신분보다 경제력을 더 높이 숭배하는 풍조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인도 전문가들은 다른 개발도상국에서 벌어진 신분제도의 붕괴보다는 속도가 더 느릴 것이고 전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