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기업에 근무하는 이명호(39)씨 부부는 23일 ‘샌드위치 휴일’를 이용해 초등학교 2학년 딸과 함께 일본 도쿄로 가족 여행을 떠났다. 24일 석가탄신일에 이어 25일(금요일)은 회사와 학교가 모두 임시휴무다. 올해 들어 두 번째 떠나는 가족 해외여행. 지난 1월에는 2박3일 일정으로 중국 상하이를 다녀왔다. 이씨는 “월차 휴가를 냈고, 딸은 체험학습으로 신고하면 결석 처리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인천국제공항 발권 데스크 앞에는 수속을 밟는 여행객들의 줄이 30m 이상 길게 늘어서 있었다. 이씨처럼 가족단위 여행객이 어림잡아 20%는 넘어 보였다. 대한항공 이승렬 차장은 “최근에는 평일에도 가족단위 여행객들로 공항 라운지가 꽤 붐빈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 해외 여행객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1~3월 내국인의 해외 출국자는 모두 331만명. ‘쌍춘년 효과’로 해외 신혼여행객이 몰렸던 지난해 1분기(275만명)보다 20% 이상 늘어났다. 하나투어 김희선 팀장은 “여행업계의 보릿고개인 3~5월에도 해외여행이 거의 줄지 않았다”며 “이젠 비수기라는 말이 무의미해졌다”고 말했다.

뒤바뀐 휴가문화…사라진 비수기

NHN 태봉섭(32) 대리는 회사로부터 항공료를 지원 받아 지난 3월 미국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뉴욕과 워싱턴, 나이아가라 폭포를 둘러보는 10일 간의 일정이었다. 그는 오는 9월 정기 휴가 때도 해외로 다시 나갈 생각이다. 태 대리는 "휴가를 여름에 가야 한다는 건 구세대적 사고"라며 "덜 붐빌 때 떠나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휴가 시기를 연중 내내 융통성 있게 운영하면서 비수기 때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비수기에 값싼 여행 상품을 구입하면 국내·해외 여행 간 가격 차이가 거의 없다는 것도 비수기 여행을 늘리는 요인이다. 요즘 주말을 이용해 중국 상하이로 떠나는 2박3일 여행상품의 가격은 40만원대 초반. 여름 성수기 제주도 여행상품과 거의 비슷하거나 오히려 싸다. 이 때문에 비수기인 3~5월의 해외여행이 최근 들어 크게 늘었다. 하나투어가 성수기인 1월에 떠나는 여행객을 100%로 보고, 비수기인 3월 여행객 비중을 계산해 본 결과 2004년 61.4%에서 올해는 80.5%까지 올라갔다.

제일기획과 NHN 같은 기업은 장기 휴가를 적극 장려하면서 해외여행이 늘고 있다. 제일기획 성완제 국장은 “직원 재충전을 위해 한 달 이상 장기 휴가를 보장하고 있다”며 “장기 휴가자들은 거의 모두 해외여행을 떠난다”고 말했다.

고등학생들의 해외 수학여행도 크게 늘었다. 2004년에는 서울시내 고교 가운데 해외로 수학여행을 다녀 온 곳이 3곳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44곳이 중국이나 일본 등지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주5일제로 단거리 해외여행 증가

바뀐 근로기준법도 해외여행 증가에 한몫 한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개정된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연차 휴가를 사용하지 못한 경우, 수당으로 보상 받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휴가를 사용하는 추세다.

웅진코웨이 주현철 팀장은 “징검다리 연휴의 경우, 많은 직원들이 연차를 내고 해외여행을 떠난다”며 “정기휴가도 여름에 몰리는 것보다 흩어져 가는 것이 팀 업무 공백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연차를 이용한 주말 여행은 대개 중국이나 일본, 동남아 등 근거리 여행이 많다. 한국관광공사가 지난 3월 실시한 국민해외여행 실태조사에 따르면, 방문국가는 근거리 여행지인 중국(28.5%)과 일본(20.7%)이 가장 많았다. 또 해외 여행객들은 방문지별로 평균 4.8일을 체류했다.

◆항공권 구하기 전쟁

해외여행이 급증하면서 일본이나 동남아 등 인기 노선은 항공권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다. 이달 중순 미국 뉴욕을 다녀온 에쓰오일 김동철 부사장은 “일정을 앞당겨 급히 귀국할 상황이 생겼지만, 이코노미석은 물론 비즈니스, 퍼스트 클래스마저 예약이 넘쳐 발을 동동 굴렀다”고 말했다.

지난 4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미주 노선 탑승률은 평균 76.1%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 포인트 상승했다. 일본 노선도 지난해보다 3.9% 포인트 상승한 69%의 탑승률을 기록했다. 아시아나항공 마재영 차장은 “일본과 동남아 등 인기 노선의 경우, 비행 편수를 늘렸지만 수요를 따라잡기 어렵다”며 “단거리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 금요일 저녁이나 토요일 오전 출발 시간대는 표를 구하기 힘들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