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심작가]: 얼마 전에 가출 아니, 출가한지 거의 15년 만에 처음으로 지방 사는 어머님께서 저의 집을 방문하셨답니다. 제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작가 출신인지라 그냥 밍밍하게 넘어가긴 뭣하더라구요. 이동하는 동안 차 안에 평소 어머니가 즐겨 들으시는 김영임의 ‘회심곡’을 잔잔히 깔아드렸죠. 어머니가 완전 감동하셔서 별 다섯개 효자라고 하셨어요.

[얼음공주]: 어머 장군님 돌침대만 받는다는 그 ★★★★★! 음. ‘세상, 뭐 있어’ 하는 표정으로 까칠하게 세상을 대하는 사람들도, 어머니 아버지 얘기가 나오면 ‘급효자’ 가 되는 것. 우리 신작가께서도 역시 그런 모드로세. 근데 그 지극한 가족사랑이 우리의 문제 아냐? 비단 한화그룹 김승연 부자 활극 사건만 문제는 아니라는 거지.

[효심작가]: 제 친한 친구의 어머니는 약간만 맘 상하셔도 바로 금식기도 들어가세요. 아들이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싹싹 빌 때까지 거의 미라 상태까지 가시죠. 그 사랑이 결국 녀석으로 하여금 세계를 향해 눈뜨게 하더군요. 엄마 없는 데로 이민 가는 게 소원이라고.

[얼음공주]: 어머니의 아들사랑이 유난하고, 그 유난함이 아들에 대한 족쇄형 사랑으로 돌변하는 경우가 흔하지. 난 솔직히 아줌마들이 “아들 아들”하고 부르는 것부터 시작해서, 좀 잘됐다 싶은 아들을 부를 때 ‘이판사’ ‘김교수’ 식으로 부르는 걸 보면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런 식의 호명은 결국 아들에 대한 이상 기대감의 발현이 아닌가 하는 느낌.

[효심작가]: 아들을 꼭 직함으로 부르고 싶었던 엄마의 아들이 범죄자가 되면 진짜 괴로우시겠다. 김강간범, 이절도범, 박폭력범 뭐 이러실까? 근데 그런 건 있더라구요. 제가 ‘엄마’가 아니 ‘어머니’라고 했을 땐 어머니께서도 한결 절 어른으로 대해주시는 느낌 말이죠. 최근에 어디서 맞고 아버지한테 꼰질렀다 일커진 분은 평소 아빠라고 하는지 아버지라고 하는지 갑자기 궁금하네요.

[얼음공주]: ‘아버지’라고 불렀다는 피해자 증언! 내가 궁금한 건, 이건데. 왜 엄마들은 아들의 범죄적 행동에 너그러울까 하는 것. 이를테면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를 성추행했을 때, 그 ‘벌’의 정도가 약해서 결국 아들을 상습적 성추행범으로 만든다는 걸 방송에서 본 적이 있어. 왜 우리 엄마들은 그렇게 아들의 범죄적 행위에 관대한가 말이다. 그러니까 아들들은 언제나 엄마에게 껌벅 죽고. 과연 이런 게 모자간의 진정 사랑일까.

[효심작가]: 남자들한테 가장 약발 잘 먹히는 욕은 엄마에 관한 것들이죠. 그런 욕을 들으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잠시 ‘미친 소’가 되어요. 반대로 아들 욕 들은 엄마들은 오죽하겠어요. 늘 어머니의 사랑 앞에는 ‘무조건’이나 ‘완벽한’이란 수식어가 붙잖아요. 어머니들에게 아들은 늘 무조건 완벽하게 용서가 되는 거 아닌가요?

[얼음공주]: 근데 정말 모든 어머니가 자식에게 완벽한 사랑을 주셨을까? ‘대부 3’에서 알 파치노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해. ‘어떤 가족에게나 나쁜 기억이 있다’고. 난 아들들이 ‘모성’이란 신화를 멋대로 아주 판타스틱한 신화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봐. 한마디로 냉철하게 어머니를 ‘리뷰’하기 보다는 그냥 광고문구처럼 ‘나의 어머니는 아름다웠다’ 식으로 말야. 그리고 그게 효심이라고, 그리고 자신의 인생은 행복했다고 생각하는 거지. 재미있는 건 또 있어. 그런 남자아들일수록,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된장처럼 시간이 갈수록 숙성하는 데 반해, 아내에 대한 사랑은 우유처럼 유통기한이 지나면 그냥 상해버리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지.

[효심작가]: 사실 ‘애증’이란 단어만큼 어머니와 아들사이에 사랑에 어울리는 말은 없는 거 같아요. 모성애가 느껴지는 여자에게 약하면서 반대로 어머니가 느껴진다는 이유로 더 이상 여자로 보기 힘든 거 때문 아닐까요? 상당히 남자다운 아이러니죠.

[얼음공주]: 어머니 같은 행동을 하는 아내들은 정말 많지. 아주 예전에 선배가 대취하여 널부러진 적이 있었어. 친한 여자 후배랑 둘이서 산넘고 물건너, 돈쓰고 힘써가며 갖은 고생 끝에 그 집에 선배를 딱 모시고 갔는데, 그 부인이 우릴 보더니 “대체 어떻게 술을 먹였길래 이렇게 됐느냐”며 화를 내더라. 그건 남편 후배가 아니라 불량아들의 친구를 혼내는 분위기였어. 자기 남편을 데리고 온 사람에 대한 예의상실, 누가 술을 먹였는지에 대한 팩트 미확인 등의 많은 문제가 있지만, 더 큰 문제는 남편을 성인이 아니라, 그냥 아들처럼 대하는 태도 아니었을까. 그건 기괴했어.

[효심작가]: 그럴 땐 선배가 아무리 말려도 막무가내로 마셨다고 하셔야죠. 집에 마누라 생각하면 안마실 수가 없다고 행패를 부렸다고 하시죠. 그건 약과에요. 남편에게 자식처럼 지나친 내리사랑을 퍼붓다 가정 파탄난 경우도 있어요. 시부모와 같이 살면서 시아버지가 집에 오면 내다보지도 않는다네요. 오로지 자기방에 틀어박혀 있다 남편 퇴근하면 나와서 방으로 끌고 들어간데요. 남편은 세상에 자기 밖에 없다는 여자 내치기도 괴롭고.

[얼음공주]: 그런 입장에 처하면 절대 출소하지 않을 감방동료와 2인실에서 무기징역을 살고 있는 느낌일 것 같아.

[효심작가]: 전 어릴 때 굉장히 공부 잘하는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걔 어머니가 친구를 불러내서 ‘저렇게 공부 못하게 생긴 친구랑은 놀지 말라’고 했던걸 들은 기억이 있어요. 어린 맘에도 괜히 그 친구에게 해가 되고 싶더라구요.

[얼음공주]: 그러니까 결국 배려없는 집착적 사랑은 사랑하는 그 사람까지 망칠 수 있는 것 같아. 결국 사랑한다면, 사랑할 수록, 좀 식히는 지혜가 필요한 거겠지.

[효심작가]: 부장님은 늘 아름답고 지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저 혼자만의 생각인 거 같아요. 어때요? 절제된 애정이 느껴지세요?

[얼음공주]: 에이 부끄럽게. 신 작가의 평소 ‘재섭는’ 태도를 보면 절대 효자라고 생각하기 힘든데, 의외로 효심이 지극해. 난 그런 점이 참으로 신선하게 느껴지는 걸, 절제하기 참 힘들고 그렇다.

[효심작가]: …. (로그아웃)

●얼음공주 박은주-화기애애한 분위기도 급속냉각시켜 버리는 재주를 가졌다. 엔터테인먼트부장으로 '발칙칼럼'을 썼다. zeeny@chosun.com

●효심작가 신정구-쿨 가이로 분류되나 어머니 얘기만 나오면 눈물 글썽 분위기. 방송작가로 '안녕 프란체스카'를 썼다. sooooo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