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때문에 가려진 ‘오이디푸스 왕’의 문학적인 요소를 짚어볼까요? 문인들이 유난히 우울증에 시달리는 이유도 내친 김에 알려 드리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장의사 강그리옹’ 등을 번역 소개한 불문학자 이재룡 교수(51·숭실대 불문과)가 첫 산문집 ‘꿀벌의 언어’를 냈다. 2004년 1월부터 월간 문예지 ‘현대문학’에 22회에 걸쳐 연재한 글들을 묶은 이 책에서 그는 실력있는 번역자가 아닌 ‘입담 센 문학 이야기꾼’으로서 새로운 면모를 과시했다. 그는 “시와 소설이 문학의 도시에 지어진 건물들이라면, 나는 그 건물들 사이로 난 골목길 풍경을 스케치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의 첫 산문집은 문인들의 삶과 문학사에 새겨진 사건들을 역사·사회현상·심리학·의학 등의 다양한 프리즘을 통해 투시한다. 루마니아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문명을 떨친 소설가 엘리아데(Eliade)와 시오랑(Cioran) 등이 2차대전 당시 나치와 파시즘에 동조한 이유는 문인들의 혈관 속에 흐르는 예술을 향한 열정이 잘못 분출됐기 때문이다. “문인들은 예술적 에너지가 보통사람보다 비정상적으로 많은데, 그 에너지가 상식의 눈을 가리면 보통사람의 눈에는 빤히 보이는 정치적 오류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문인들을 유달리 괴롭혀 온 우울증의 실상도 문학사에서 찾아낸 다양한 사례를 통해 분석했다. “히포크라테스가 우울하고 사색적인 인간을 흑담즙형 인간이라고 설명한 이후 서양인들은 오랫동안 문학이 머리가 아닌 비장에서 나온다고 믿었습니다.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한 사람 가운데 시인이 20%나 된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그는 로맹 가리, 헤밍웨이, 버지니아 울프 등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문호들을 거명하며 “세계 명작을 읽는 독서행위는 남의 우울증에 동참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해석을 곁들였다.
문자의 쇠퇴와 이미지 우위가 가속되는 최근의 현상에 대한 견해도 눈에 띄는 부분. 이 교수는 이미지의 범람이 문자의 부활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는다. “사람들은 목적지에 빨리 가려고 자동차를 만들었지만 자동차가 범람하자 오히려 차를 버리고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조깅을 시작한 것처럼, 문학에서도 이미 역방향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며 “최근 컴퓨터와 TV를 멀리하고 책을 가까이 하는 움직임이 뚜렷해진 현상을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그러나 “문학이 다시 힘을 얻더라도 오락성은 여전히 영상에 밀릴 것”이라며 “대신 파편처럼 흩어져 고립된 현대인들에게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들을 자기중심적인 세계에서 벗어나도록 도울 수는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