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부터 전국적으로 도로명 주소가 크게 바뀌었다. 새로 생긴 길 이름 때문에 상당히 혼란이 벌어지는 것 같다. 인천 연수구에선 ‘야동1가’라는 주소 때문에 주민들이 어감이 좋지 않다고 이름을 바꿔달라고 한다는 보도를 보았다. 이런 일들이 앞으로 전국적으로 많이 일어날 것 같다. 예전에 제주도의 어떤 마을 지명이 ‘大佳里(대:가리)’인데, 어느 교수가 (대가리)로 읽고 이런 지명이 말이 되느냐고 주장한 적도 있었다.
오늘날 이런 문제가 일어나는 이유는 대부분 한글 전용때문이다. ‘大佳里’는 한자로 적으면 ‘크게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좋은 뜻을 지닌 이름이다. 발음도 (대:가리)로서 몸의 ‘대가리’와는 구별된다. 이 이름을 지었을 때는 한자를 쓰던 시절이라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날 한글 전용을 하다 보니까 그 발음도, 그 뜻도 정확히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 오해가 빚어진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지명에서 오는 혼란은 한글 전용에 대부분 그 원인이 있다. 무릇 좋은 언어는 정확성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원래 한자를 조합하여 만든 한자어 지명을 한글로 적게 하니 우리말의 정확성이 후퇴해버렸다. 한글 전용이 한국어의 정확성을 후퇴시켜, 쓸데없는 오해와 혼란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야동1가’도 마찬가지다. 그 마을은 원래 대장간이 있어서, ‘쇠불릴 冶(야:)’자를 넣어서 한자로 ‘冶洞(야:동)’이라고 마을 이름을 지은 것이다. 이 이름을 한자로 적으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한글로 적으니 오늘날 이상한 의미로 쓰이는 ‘야동(野動·야한 동영상)’과 소리가 같아져 버린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이 지명을 한자로 적으면 두 낱말이 구별되어 아무 문제가 없다. ‘野動’이란 말은 최근에 생긴 말이다. 이처럼 나중에 생긴 말 때문에 오래 전에 있었던 지명을 바꾸어야 한다면, 앞으로 어떤 새로운 말이 생겨날지 모르기 때문에 어떤 지명이건 바뀌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이유로 지명을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지명을 원 글자인 한자로 적어서 정확하게 쓰도록 노력하는 게 올바른 해결방법이다. 따라서 ‘冶洞(야:동)’이나 ‘大佳里(대:가리)’처럼 한글 독음을 적어주면 아무 혼란이 없다. 일단 오해를 빚는 지명만이라도 이렇게 적어서 쓸데없는 문제의 소지를 없애자.
아울러 오늘날 한글 전용으로 인해 우리 국민의 한자 실력이 너무 떨어져 이에 대한 기본교육이 필요하다. 아마도 ‘冶洞’으로 한자로 적어 놓아도 그 정확한 발음과 의미를 알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이다. 자기 동네 이름을 원 글자 그대로 적어놓고, 발음도 의미도 알 수 없다면 이는 큰 문제다. 중국에서는 한자 1500자를 읽고 쓰지 못하면 문맹(文盲)으로 본다고 한다. 그 기준에선 오늘날 우리 국민 대부분도 문맹이 되어버렸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새로운 문맹퇴치운동도 함께 벌 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