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 105m , 세로 68m 의 공간. 지구촌의 이목이 쏠리는 서울월드컵경기장의 규격이다. 축구장에선 야성이 숨쉰다. 생존을 위한 본능이 있다. 먼저 뛰어야 살고, 먼저 생각해야 골을 넣을 수 있다. 세계인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인 축구. 삶의 현장, 축구장으로 가본다. < 글=이상주 기자sjlee@sportschosun.com>
축구는 사냥의 다른 모습이다. 수렵민족의 정서와 가깝다. 큰 틀의 작전이 있지만 경기가 스피드하게 진행돼 선수가 상황을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시간이 다급하기에 생각도 찰나에 해야 한다. 따라서 경기가 감독 보다는 선수의 순발력과 판단력에 많이 좌우된다. 먹잇감을 사냥하는 이들의 임기응변과 순간적인 재치가 그대로 녹아있는 스포츠다. 골문을 향해 돌진하는 모습은 집단사냥을 하는 수렵민족을 연상시킨다. 이런 생활에 익숙하면 성격도 적극적이고 모험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 영국 훌리건 등의 난동은 모험심이 빗나가 형성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축구 때문에 전쟁까지 한 사례는 군중심리도 한 몫을 했지만 집단의 용기가 넘쳤기 때문이다. 국제축구연맹 회원국은 207개. 지구촌 최대의 조직이다. 축구는 전세계를 좌지우지할 가장 큰 무기다.
득점은 공격수 11명의 바른 판단, 수비수 11명의 잘못된 상황 인식, 심판의 정확한 판단이 어우러져야 가능하다. 선수는 판단을 0.2초내에 해야 한다. 이는 상황을 보고 반응을 나타내는 시간이다. 초보 선수는 처음엔 상대와 볼만 볼 수 있지만 오랜 훈련을 하면 볼, 상대팀, 자기팀 움직임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선수는 1게임을 뛰면서 최소 1600번 이상을 판단한다. 이같은 근거는 선수의 이동거리에 있다. 선수는 경기당 8~15km를 뛴다. 한 번에 10m씩 달린다고 생각하면 경기당 800~1500회 뛰는 결정을 하는 셈이다.
그런데 뛰면 멈추어야 하므로 판단은 두 배인 1600~3000회가 된다. 11명으로 구성된 한 팀에서 게임당 순간 판단은 1만7600~2만4000번이다. 양 팀 선수를 모두 계산하면 3만5200~4만8000번에 이른다.
프로축구 선수는 한 게임에서 8~15km를 뛴다. 가장 많이 뛰는 포지션인 미드필더가 대부분 11~13km 정도이다. 15km쯤 뛰는 경우는 K-리그나 국제경기나 거의 없다. 미드필더는 공격과 수비를 모두 관할하기에 상대적으로 영역이 넓다. 주로 박지성(맨유)은 공격형 미드필더로 나서고 이을용(서울)은 약간 처져 중원의 지휘관 역할을 한다.이들의 뛰는 거리는 초인적이다.
특히 박지성은 많이 뛰면 15km를 이동한다. 에인트호벤 시절에도 그랬다. 네덜란드 기자는 동양의 청년이 열정적으로 뛰는 모습에 반해 '산소 탱크(Oxygen Tank)'라는 표현을 썼다. 등 뒤에 산소통을 지고 달리는 선수처럼 지치지 않는 체력을 그린 것이다.
박지성이 프리미어리그에서도 통하는 이유중 하나가 골을 향해 맹수처럼 질주하는 폭발적인 스피드다.
2006년 독일월드컵 조 예선에서 축구소국 트리니다드토바고는 유럽의 강호 스웨덴과 0대0 무승부를 기록했다. 트리니다드토바고의 감독 베인하커르는 기자 회견에서 '축구는 수학이 아니다'는 말을 했다. 전력에서 절대 약세인 트리니다드토바고는 축구가 수학적 확률이나 정확성이 적용되면 지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무승부였다. 베인하커르는 "축구는 직접 대결해야 결과를 안다. 축구에서는 2+2=4의 등식은 매우 드물다. 2+2=3, 또는 2=2=5의 결과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이것은 축구는 수학적 치밀함 못지않게 심리, 날씨 등 다양한 변수에 의해 좌우됨을 말해준다. 한국은 과거 평가전에서 브라질을 이긴 적이 있다. 프랑스와도 2대3으로 접전을 펼쳤다. 축구가 수학이면 이변의 아름다움은 존재할 수 없다. 축구는 승리를 사냥하는 전쟁이다.
'재능있는 자도 열심히 뛰는 선수를 이길 수 없다. 그러나 이 사람도 즐겁게 하는 선수를 당하지 못한다.' 이영표(토트넘)의 말이다. 소속팀과 국가대표팀에서 수비수로 뛰는 그는 축구를 즐기면서 하는 대표적인 선수다. 기분 좋게 운동을 하기에 긴장이 덜 돼 좋은 플레이가 가능하다. 뛰는 것도 부드럽다. 이영표와 같은 수비수는 다른 포지션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게 뛴다. 그래도 10km 가깝게 이동한다. 공격수와 순간적인 볼다툼을 해야 하기에 순발력과 스피드가 생명이다. 이영표가 프리미어리그에서 총알 스피드를 지닌 션-라이트 필립스(첼시) 등을 잘 마크하는 것도 부드러움과 순발력을 겸비했기 때문이다. 수비수는 1차 임무가 끝나면 공격수로 전환해 오버래핑을 해야 한다. 그리고 재빨리 원 위치로 복귀해야 돼 체력도 관건이다.
베어벡호의 골키퍼는 누구일까. 김용대(성남)와 김영광(울산)에게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판단이 빠른 김영광은 순발력도 좋고 과감한 전진 플레이로 팬들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이 점에서 다소 안정감이 떨어진다는 평도 듣는다.
김용대는 차분한 경기운영, 즉 모험 보다는 안정감을 우선하는 선수로 평가된다. 98프랑스 월드컵 주역인 김병지(서울)는 한 때 하프라인 근처까지 볼을 몰고 나왔다. 팀이 뒤질 때는 공격수로 전환해 헤딩골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골키퍼가 골 마우스를 벗어나는 것은 이례적인 모습이다. 대개 골키퍼는 골마우스에서만 오가기에 이동거리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골키퍼가 한 게임에서 이동하는 거리는 3~5km에 이른다.
선수는 민첩한 플레이 뿐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체력안배를 할 수 있도록 걷기를 잘하는 것도 능력이다. 뒤로 걸어야 할 때도 많다. 선수는 결정을 해야 전력질주를 할 수 있다. 그 전엔 가볍게 움직이면서 볼과 상대 위치, 동료들의 움직임을 본다. 보통 출발 지점에서 10m 이내, 또는 20m 안에서 대부분의 플레이를 펼친다. 그래서 짧은 거리를 전력질주 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그러나 전력질주는 10% 이내다. 거리로 따지면 1km쯤이다. 숨도 안 쉬고 달릴 때는 크로스 된 볼을 �i아 돌진할 때나 볼을 빼앗겨 역습 당하는 상황 등이다. 빠르게 5~6m를 뛰고 속도를 줄이는 게 20~30%이고, 조깅 정도의 빠른 걸음을 포함한 가벼운 움직임이 50% 이상이다. 특히 뒷걸음도 5~10%는 된다. 13km를 움직이는 미드필더는 1km를 뒤로 뛰는 셈이다.
가장 많이 뛰는 사람은 선수가 아닌 심판이다. 성인 선수들은 한 게임에서 8~15km를 뛴다. 이에 반해 주심은 미드필더 이상으로 뛰어야 한다. 보통 15km를 달린다. 한 게임을 치르면 몸무게가 3~4kg 빠진다. K-리그에 소속된 심판은 너나 할 것 없이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일주일에 최소한 한 두번은 정기적인 운동을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체력이 달려 칼 같은 판정이 쉽지 않다. 심판은 볼에 최대한 접근해야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볼은 꾸준히 흐르고, 선수는 초속 4m로 달려든다. 또 볼을 사이에 두고 선수끼리 몸접촉도 심하다. 이 과정서 반칙도 나온다. 일부는 아예 지능적인 반칙을 일삼는다. 할리우드 액션에 대해 퇴장까지 명하는 것도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함이다. 현대축구는 공수전환이 빠르고 오프사이드 전술이 많아 심판은 계속 뛰지 않을 수 없다.
승리를 위해선 집중이 필요하다. 선수들이 집중을 하는 데도 방법이 있다. 무조건 최선을 다해서는 안된다. 심리적 민감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이천수(울산)가 프리킥을 한다고 하자. 공을 골문을 향해 차는 것은 같지만 집중하는 단계는 4단계로 나눠져야 한다. 심리학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한다. 먼저, 몰입을 하는 첫 단계는 큰 그림으로 외부부터 집중한다. 차야 할 공이 아닌 바람이나 잔디 등 주위 여건을 살핀다. 두번 째는 크게 보지만 마음에 집중한다. 찰 공을 보면서 예전의 경험을 되뇌인다. 이런 방법이 좋았다고 전략을 세운다. 세 번째는 상상의 시각화다. 킥을 할 때 휘어가는 각도와 속도를 머릿속에 그림으로 그려본다. 또 차는 순간의 발의 감각을 마음 속으로 느낀다. 마지막으로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갖고 최종집중을 한다.
'스트라이커는 골로 말한다.' 국가대표팀 포워드인 조재진(시미즈)의 말이다. 이동국(미들즈브러)과 대표팀 원 스트라이커 경쟁중인 조재진은 강한 체력과 헤딩력이 돋보인다. 포워드는 여기에 단거리 선수 못지 않는 스피드가 생명이다. 과거 차범근(수원 감독)이나 이상윤(차범근축구교실) 같은 전력질주 능력이 필요하다. 지난달 24일 한국과의 평가전에서도 우루과이 스트라이커 부에노의 역습 스피드도 대단했다. 골을 넣는 직업인 포워드는 많은 시간을 상대 지역에만 있다. 포워드의 이동거리는 11km가 일반적이다. 미드필더나 수비수로 부터 배급되는 볼을 받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특히 포워드는 전력질주가 많다. 순간 스피드에서 수비수 보다 앞서야 사는 직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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